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용서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카인입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께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자 하느님은 그에게 “너는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카인이 이렇게 항변합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창세4,13) 여기에서 짊어지다는 미네스מִנְּשֹֽׂא 인데 (~에 얽매인, ~를 짊어진) 등을 의미하지만 본래대로 돌아간다는 “자기자신”의 의미도 있기에 70인 역에서는 이를 "용서받기에"로 옮겨놓았습니다. “그 형벌은 제가 용서받기에 너무나 큽니다”
이어서 하느님은 카인을 용서하는 대신에 그를 죽이지 못하게 이마에 표를 찍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창세4,15)그래서 그런지 카인의 후손들은 용서보다는 보복 혹은 앙갚음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카인의 후손 중에서 라멕은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보복을 하리라고 맹세합니다. “카인을 해친자가 일곱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4,24) 이렇듯 카인은 잘못을 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건만 그의 후손들은 보복과 앙갚음을 맹세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보복과 앙갚음에는 한도가 없다고 말했던 카인의 후손들을 상기하며 이제는 용서하는 데에 그처럼 일곱이 아니라 일흔일곱번이라도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파블로 신부님의 “마지막피정Hasta la Cumbre”에서 형제들이 서로 용서하며 자비롭게 오손도손 살아가는데는 한가지 도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쌍안경입니다. 쌍안경은 사물을 크게보이게도 하고 반대로 사물을 작게 보이게도 합니다. 누군가 형제들에게서 잘못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쌍안경을 집어들고 거꾸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토록 나쁘게 보이던 형제의 잘못이 작게 변하면서 결국 나쁜감정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형제들에게서 장점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쌍안경을 똑바로 집어들고 그의 장점을 더 크게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형제의 좋은점이 더 크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본면 모든 것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입니다. 사실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을 잘 바라보는데 자비로운 쌍안경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형제들의 죄를 용서하는 방법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이 예화 또한 마찬가지로 파블로 신부님의 “마지막피정”에 나오는 “전신마비 아이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엄마 나 기도했어요” “그래 뭐라고 기도했니?” “저 대신 저쪽에 앉아 있는 저 아이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저 아이의 얼굴 좀 보세요.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아프고 고통스럽게 보이잖아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저마다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늘나라의 보물 상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 상자에 값진 보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더욱 자비롭고 거룩해지는 사순시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려져서 그림이 내 마음에 들지 않게되면 어떻게합니까??? 잘못 그려진 도화지를 뜯어버리고 다음 장에 다시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림이 잘못 그려지더라도 그림을 뜯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비록 그림이 잘못그려져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대로 두시고 다음장에 새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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