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인생은 며칠을 가다가 쉬어가는 산책이다. 방향이 같은 바람에 밀려 미소를 짓고 두런두런 풀어놓은 하루에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만남은 쓸려가는 해변을 따라 걷는 파돗길이 된다. 인생은 아무런 준비없이 걷다가 님 품에 쉬어가는 산책이다. 이나중이야기 2012.08.30
효자손 잠깐 지나간 비에 수도원 자갈 마당은 파아란 가려움으로 우후죽순이다. 겨우내 껴입었던 꺼풀은 감추어 두었던 흉측을 뚫고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솟구친다. 파릇파릇 피어오른 꼽꼽한 가려움, 훅훅 달아오른 등허리에 호미는 효자손이다. 이나중이야기 2012.08.30
성모님 감사드려요 날짜에 쫓긴 논문 하루하루가 마치 밤 도둑처럼 지나가고 마침 당일 시간에 동동 걸음 재촉하여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기다려 주지 않으면 재촉한 발걸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받아주지 않으면 긴 밤 세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공에 몸을 던져 받아내듯이 날아가는 게으름을 밀고 늦.. 이나중이야기 2012.05.07
성체조배 보름인가봐요. 달이 충만해졌어요. 만찬에서 베풀어주신 빵과 포도주는 제 영혼을 어린양과 쓴나물로 제 육신은 살지네요. 잡히시던 날 드렸던 기도를 들려주세요. 그날 밤, 암흑이 하늘을 덮었지요. 당신께는 어두움도 어둡지 않아 밤도 낮과 같으시지요. 제게는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 이나중이야기 2012.04.05
병아리의 기도 따사로운 햇살과 신선한 바람이 콧끝을 스쳐요. 알을 품던 암닭은 접은 날개를 펴고 이녁집 새밋가로 마실나가요. 엄마엄마 같이가요. 손을 꼭 잡고 싶지만 여울어진 알 속에서 세수도 못한채 헝클어진 머리를 틀고 무거운 눈거풀에 감긴 눈을 부비며 옅어진 껍질을 두드려 두드려 따라나.. 이나중이야기 2012.03.27
은총의 어머니 어둠 속 안개 짙은 사순의 싸늘함이여 수난의 길 굳은 과녁에 차가운 화살이 꽂히고 또 꽂히고. 아가 두 볼에 비친 부끄럽고 수줍던 햇살 너머로 아빠는 쇄골에 고인 모독스럽고 치욕스러운 어둠을 마신다. 수난 길에 흘린 눈물을 따라 다가오시는 은총의 어머니이시여. 이나중이야기 2012.03.21
봄이 오네요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네요. 작년에 심어두었던 부추가 소불소불 올라 오구요. 쭈빗쭈빗 석류나무 가지에 긴 부리 초롱이가 쉬고있네요. 탁발머리 향나무가 걸터 앉은 담벼락으로 고양이는 어늘어늘 지나가구요. 웅크린 땅이 간질어주는 봄비에 젖으면 곧 저고리 물고 피어오를 목단.. 이나중이야기 2012.03.13
구럼비 나를 파괴해서 평화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밟혀서 행복해 질 수만 있다면 모두를 내어놓고 마음 편히 묻힐 수 있으련만. 나를 자르고 나누어도 욕심이 편치 않고 화려한 외투로 몸을 가려도 얼굴이 곱지 않아 품고있던 표창에 되려 내가 찔리니 아, 절규로 외쳐 부르는 평화야! 행복.. 이나중이야기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