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두아들의 비유는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이야기입니다. 마태오복음은 모두 168개(마르코105/루카177개/요한82개)의 단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중에서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는 33개(마르코6개/루카51개/요한62개) 정도 됩니다. 이 33개의 이야기들은 대략 율법 기도 정직 자선 단식 거룩한이 욕된이 눈먼이 귀먼이 멍에진이 죄인 주님의종 가라지비유 보물비유 진주비유 그물비유 성전세바침 작은이 매정한종비유 혼인독신 선한포도밭주인비유 두아들비유 열처녀비유 최후심판 경비병매수 등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공관복음에서 다루지 않은 이 33가지 이야기들을 토대로 마태오복음의 특징을 유추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은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더욱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루카복음은 마태오복음과 다른데 루카복음은 여인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더욱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마르코복음은 절대적으로 예수님 중심인 반면 마태오복음은 죄인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그리고 루카복음은 여인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오늘 복음 두아들의 비유에 머물러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맏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는데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더니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지않았다고 합니다. 즉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고 다른 아들은 아예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뜸금없이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맏아들이라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맏아들인지 둘째아들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문맥에 따라 본다면 맏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의 물음에 “맏아들입니다”하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는 말씀없이 죄인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고 곧바로 세례자 요한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죄인들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세례자 요한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포도밭에가서 일했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한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은 세례주는 일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마태3,5-6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물론 가장 마지막에는 예수님도 요한에게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다가 가지 않았던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마지못해 세례를 받으러 오자 요한은 그들을 내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서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죄인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새로운 약속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아 옛날에 내가 이렇쿵 저렇쿵 했고 왕년에 우리 집안이 어떻게 어떻게 했었어 그러니 지금 내가 첫째야~~ 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약속이 아니고서는 하늘나라에 먼저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두 아들의 비유에서 먼저냐 나중이냐에 관한 요점을 정리할 수 있도록 사도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장황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예 로마서 전체가 이 비유이야기를 설명해주고 있다고 본다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특히 로마11,11이하에서 다른 민족들의 구원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히지 않으신 맏아들과 작은 아들에 관한 하느님의 심오한 자비를 보여주는 단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애초부터 맏아들과 둘째아들의 먼저냐 나중이냐에 의미를 두지 않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그렇습니까??? 성바오로수도회는 현대수도회라고 했습니다. 현대수도회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대수도회입니까??? 그러면 고대 수도회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고대 수도회와 중세 수도회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고대수도회 때에는 고대 사람이셨고 중세 수도회 때에는 중세 사람이셨다는 말입니까??? 즉 이 말은 성바오로수도회만 현대 수도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현존하는 모든 수도회가 현대 수도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만 현대감각에 맞게 수도생활을 하도록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다른 영성이 우리 바오로인들에게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른 영성이란 다름이 아니라 악한 세상을 선용하는 영성입니다. 멀리서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참으로 괴롭지만 죄인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선용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육신은 시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인으로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다가가야 악한 세상을 선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선용하는 것인지 우리가 세상을 선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한 열매가 맺힌다면 우리가 그 열매를 보고 악한 세상을 선용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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