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5주간 월요일 루카8,16-18 등불과 빛 그리고 등경과 여인들 (20230923 부산협력)

jasunthoma 2023. 9. 24. 22:3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하게 생각해볼 부분은 등경과 등불과 빛입니다. 즉 등불을 켜서 빛을 보게 할 때에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등불을 어디에 놓아두냐에 따라 빛을 사람들에게 비출 수도 있고 함지박으로 빛을 덮어 꺼버릴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백배의 열매를 맺든지 아니면 싹도 틔워보지 못하고 새들에게 먹히거나 또는 말라비틀어지거나 가시덤불에게 숨이 막혀버린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 정녕 가진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빼앗기는 것은 빛입니다. 즉 등경위에 올려놓은 빛을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그리스어 성경 본문에 의하면 빛은 포스φως인데 포스를 파오φάω로 읽게되면 빛나다 반짝이다 비치다 라는 빛의 의미가 되고 포스φως로 읽게 되면 남자, 사람, 인간이라는 아들의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빛이 사람의 아들이라면 자기가 가진 줄로 여기던 것은 열매에 해당되는 씨앗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은 등불의 비유에서 가진줄로 여기던 빛을 빼앗길 것이다 또는 빛을 잃을 것이다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는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혹은 아무리 좋은 일곱빛깔의 빛이라고 하더라도 등경위에 올려놓지 않는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이 말씀은 또한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좋은 곳에 떨어지지 않으면 새들의 먹잇감이 되어 열매맺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는 등불의 비유는 루카복음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유이야기인데 특히 마르코복음의 내용은 오늘 복음 루카복음에 비해 좀 더 자세하고 길게 소개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르코복음의 또 다른 특징은 마르코복음은 모든 비유의 중심이 예수님께로 집중되는 그야말로 예수님 중심 복음인 반면 루카복음은 좀 다릅니다. 물론 루카복음의 비유들도 분명히 예수님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에 더해 좀 더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비유 이야기들을 배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르코 복음에서는 등불의 비유를 포함해서 네가지 비유를 한 묶음으로 배치해놓고 있지만 루카복음은 두가지만 전해줍니다. 마르코복음의 네가지 비유에서 등불의 비유는 세 번째에 배치되는데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서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가 나오고 그 다음에 등불의 비유가 나오고 마지막에 겨자씨의 비유가 나옵니다. 즉 달리 말하자면 마르코 복음에서는 등불의 비유 전 후에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겨자씨의 비유가 배치된 반면 루카복음은 등불의 비유 전에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만을 배치했다는 점입니다. 즉 루카복음은 2가지 비유만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루카복음은 빼버린 겁니다. 왜 그렇게 배치를 했을까요??? 루카복음은 등불의 비유 전후에 예수님을 도와드린 여인들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참 가족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배치하기 위해서 그렇게 배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르코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도와드린 여인들의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예수님의 참 가족 이야기는 다른 네가지 비유이야기와 따로 떨어뜨려서 동떨어진 이야기로 소개하는 반면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도와드린 여인들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참 가족이야기 한 가운데에 등불의 비유가 나오도록 배치한 점입니다. 따라서 이 등불의 비유를 중심으로 전 후에 어떤 비유들이 배치되는 지에 따라서 복음사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기쁜소식의 의도를 내밀한 방식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복음 사가가 등불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 말씀의 핵심은 말씀드렸다시피 등경입니다. 그런데 이 등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내밀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경은 뤽니아스λυχνίας 뤽니안λυχνίαν으로 되어있는데 원형 뤽니온λυχνίον은 등경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까치발repisa”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흔히 까치발을 일컬어서 삼각대라고도 말하는데 이는 어떤 것을 안전하게 떠 받칠때에 사용하는 거치대를 말합니다. 그런데 뤽니온λυχνίον은 신약성경에 일곱 차례 쓰였는데 오늘 복음 루카복음8,16; 11,33에서 각 각 한차례 마태5,15에서 한차례 마르4,21; 그리고 특히 묵시1,12.20; 2,5에서 일곱 교회를 일컬어서 일곱 황금 등잔대라고 소개 할 때에 등잔대로 세차례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등경 뤽니온λυχνίον이라는 말은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경이 등잔과 등불을 떠받치듯이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서는 등불의 비유를 통해서 이들이 예수님을 도와드렸던 여인들이며 예수님의 참 가족은 그렇게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며 도움을 주는 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수산나 라고 루카복음만이 유일하게 전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등불의 비유에서 이 뤽니온의 이야기 양쪽에 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배치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