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여기서 머물러 볼 부분은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는 말씀입니다. 곳간을 헐어내고 더 큰 곳간을 짓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곳간은 아포테사우리쏜타스αποθησαυριζοντας로 되어있는데 아포테사우리쏘ἀποθησαυρίζω는 저장하다 비축하다 보존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포테사우리쏘에서 접두사 아포ἀπο를 제외한 테사우리쏘의 원형 테사우로스θησαυρος는 보물 재산 가슴 둥근천장 창고 작은 상자 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포테사우리쏜타스αποθησαυριζοντας의 명사형 아포테케ἀποθήκη는 창고 저장소 저장고 등을 의미하는데 아포테케에서 마찬가지로 접두사 아포ἀπο를 제외한 테께θήκη는 가슴 상자 작은상자 무덤 묘지 묘 매장하다 묻다 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더 큰 곳간을 짓는다고 했던 어리석은 부자가 하고자 했던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비유말씀입니까??? 더 큰 무덤을 만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즉 여기서 더 큰 곳간을 짓는일은 무슨 말입니까??? 자기 무덤을 짓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작은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곳간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덤을 짓는데 더크게 짓는 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런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면 좋은 점이 있는데 명절이되면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면 명절날 시간이 남아 돌아 한가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석에 동기들이 모이면 서로 몰려다니며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다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든든해 보이던 집이 어느새 텅 비어있는 것같고 푸석푸석하고 버글버글 허물어질 것만 같아 위태롭기 짝이 없는 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살던 집이 우리집이 아닐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집은 형체일뿐 그 집을 집으로 만드는 분은 바로 살아계신 부모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란 자신을 위하여 큰 곳간을 지어 재물을 모아두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와는 반대로 지혜로운 부자란, 그리고 슬기로운 부자란 다름 아닌 자신이 부유해 진 만큼 하느님 앞에서도 부유해 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쉽게말하자면 소출을 자신을 위해서만 모아두지말고 하느님을 위해서 모아두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는 소출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지말고 하느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분배를 실천하는 일인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사람의 것은 사람들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일입니다. 즉 보물과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재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비행기타고 올라갈 수도 없고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수도 없고 엘리베이터에 실어서 하늘로 올릴 수도없을 텐데 어찌하여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바라실까??하고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은 하늘나라에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여 악인은 가차없이 내 쫓아 버리시고 착하고 선한 사람은 당신의 품안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이처럼 세상에 재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듯이 재물에도 선한 재물이 있고 악한 재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이 깃든 재물이 있고 죽은 재물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의 곳간인 하늘나라에 죽은 재물은 쌓아놓을 수 없습니다. 죽은 재물은 하늘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재물이 생명이 깃들어 있는 재물이고 또 어떤 재물이 죽은 재물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생명이 깃든 재물은 자신의 땀과 노력과 애정이 그의 시간과 공간과 추억 속에 깃든 재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죽은 재물은 무엇일까요?? 죽은 재물은 전리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리품을 거두어들이게 되면 그것은 죽은 재물을 쌓아놓은 것과 같다는 애기입니다. 그리고 전리품과 같은 재물에 관하여 좀 더 생각해본다면 돈이 돈을 번다거나 혹은 먼저 세상을 떠난이의 몸 값으로, 또는 조상님이 가져다 준 재물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재물은 결코 하늘나라에 쌓아 둘 수가 없다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재물은 하늘에 들어올려지지도 않을 뿐더라 쌓아놓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런 재물은 사람의 것은 사람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람의 것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쌓아둘 수 있는 재물은 우리의 생명이 깃들어있는 살아있는 순수한 우리의 수고로운 노고로 태어난 재물이될 것입니다. 그러한 살아있는 재물은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공간과 추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과도 다름없는 시간을 누구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도하고 땅에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에게 털려버리는 미련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된 시간은 결코 하늘나라에 쌓아둘 보화로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재물보다 보이는 재물에 더 집중하는것 같습니다. 당장 내 손에 보이는 재물이 없으면 기가 꺽이고 풀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재물을 쌓기위해 더큰 창고를 짓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큰 창고라는 것은 내가 들어갈 더 큰 무덤에 다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무덤에다가 재물을 쌓아두려고 애쓰다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의 것을 가지고 하느님의 것인양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자기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재물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우리의 살아있는 유일한 재산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더욱 풍성히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눔으로써 비로소 하늘나라에 각자의 재산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추석 한가위 연휴동안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사용하여 생명의 곳간인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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