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감추어져 있던 뜻이 신약성경 마지막에가면 묵시록이라는 책을 통해서 밝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 묵시록은 아시다시피 그리스어로 아포칼륍시스ἀποκάλυψις인데 아포칼륍시스는 공개 노출 벗김 폭로 등을 의미합니다. 이 아포칼륍시스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감추어져 있어서”라는 말과 정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성경본문에 파라케칼륍메논παρακεκαλυμμενον으로 되어있는데 파라케칼륍메논의 원형 파라칼륍마παρακάλυμμα는 덮개 커튼 막 뚜껑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파라칼륍마의 어원 파라칼륍토παρακαλύπτω는 속이다 가장하다 숨기다는 뜻인데 파라칼륍토에서 접두사 파라παρα를 뺀 어간 칼륍토가 묵시록 아포칼륍시스에서 아포를 뺀 칼륍시스에 해당하는 칼륍토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묵시록 아포칼륍시스의 어원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는 밝히다 드러내다의 뜻이 있는데 아포칼륍토는 또한 접두사 아포ἀπο와 칼륍토καλύπτω인데 접두사 아포를 뺀 칼륍토καλύπτω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감추어져 있어서”의 어원과 같습니다. 즉 묵시록 아포칼륍시스는 감추어진 것에 아포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아포칼륍시스라고 하여 공개하고 노출하고 벗겨내고 폭록하다는 의미가 되고 오늘 복음에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에서 칼륍토는 감싸고 감추어지고 숨겨진다는 뜻의 칼륍토에 접두사 파라를 붙여서 더욱더 숨겨지고 더 감추어지는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감추어진 것을 앞으로 꺼낼 것인가 아니면 감추어진 것을 뒤로 집어 넣을 것인가에 따라서 정반대의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복음에서 제자들이 선택했던 것은 앞으로 꺼내지 못하고 뒤로 감추어 묻어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복음 이전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변모 장면에서 베드로가 했던 말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뒤로 감추기보다 앞으로 꺼내서 드러내고 싶어했었습니다. 성경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가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께 초막 셋을 지어 드리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초막은 스케나스σκηνας로 되어있는데 스케나스의 원형 스케네σκηνή는 텐트와 천막이라는 의미에서 초막이라고 했지만 사실 무대와 연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다볼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는 예수님을 무대와 연단 앞으로 모시어 드러내고 싶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 조차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는 말 때문입니다. 여기서 손에 넘겨진다는 말은 수난을 받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넘겨진다고 할 때에 제공하고 바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또한 넘겨질 것이다는 말은 연회를 베풀다는 뜻에서 넘겨준다는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서 수난을 받다가 잔치집에 넘겨진 것처럼 예수님 또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그들의 연회장에서 수난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모욕적인 일은 제자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런 곳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고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것도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 베드로는 하찮아보이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복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감추기보다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1베드3,9에서 이렇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선을 행하는데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우리도 우리가 예수님때문에 영광스러울 때 우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 듯이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괴롭고 힘들고 부끄러울 때에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은총을 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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