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2주간 월요일 마태7,1-5 티와 들보, 티매오와 제자들 (20230626 부산협력자)

jasunthoma 2023. 6. 23. 22: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티와 들보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티와 들보를 상징하는 두가지 주제를 가지고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티와 들보를 재물의 관점에서 묵상해보고 그 다음에 형제적관점에서 묵상해보겠습니다. 먼저 재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 할 수 있느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남을 올바로 판단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들보입니다. 티가 아니라 들보입니다. 들보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서 지붕을 떠받치기 때문에 집짓는 재료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크고 가격이 높은 물건입니다. 들보는 그리스어로 도콘δοκόν이라고 하는데 도콘의 원형: 데코마이δέχομαι는 들보이기도 하지만 받다 받아들이다 받들다 얻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눈에 있는 이 거대한 들보를 빼내야만 뚜렷이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뚜렷이 본다는 말은 디아블레포인데 디아블레포는 정면에서 본다, 곧바로 본다, 전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를 같은 의미로 다르게 표현 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먼저 네 눈에서 받아들이고 얻은 것을 빼버려라. 그래야 네가 정면에서 전체를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들보와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는 티는 카르포스인데 이는 칩 조각 파편 단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티, 카르포스의 뉘앙스를 지닌 다른 말은 디아블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디아블로는 끊고, 나누다, 즉 나눠서 본다, 끊어서 본다는 의미로 악마를 말합니다. 여기서 악마는 다른 의미가 아니라 전체를 못보고 부분만을 보고 부분적으로 끊어서 판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얼마나 작은 것까지 부분적으로 보냐면 티끌만한 것도 따로 떼서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티끌에 가격을 붙이는 이가 다름아닌 들보를 가지고 형제를 바라보는 데코마이와 반대되는 디아블로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디아블로는 다름이 아니라 티끌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티끌과 들보는 가장 작은 재물과 가장 큰 재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는 데모니오와 같은 말인데 데모니오도 디아블로처럼 끊고 나누고 자르는 악마로 풀이됩니다. 사실 티끌과 들보는 우리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작은 재물과 가장 큰 재물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티끌은 재물로써 값어치가 없는 가장 작은 단위여서 값을 매길 수 없지만 하찮은 티끌이라도 거기에 디아블로가 붙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값이 매겨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값어치가 매겨져서 숫자로 기록된 것이 뭘까요??? 화폐입니다. 돈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하고 가르치신 겁니다. 왜냐면 하느님은 전체를 의미하는데 재물이라는 것은 끊고 나누고 쪼개는 조각 부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물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서 재물은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지상 보물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에서 재물은 그리스어 원문에 마모나이μαμωνᾷ (아 맘몬 a Mamón:부의 숭배자) 이라고 쓰여졌는데 이는 아람어 동사 "amán아만"으로 소리납니다. 아만amán'부양하다' '공급하다'로 번역되는데 이는 부의 인격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마몬Mamón은 히브리어 어원의 아멘Amén의 의미와도 같은데 이는 우리가 기도 끝에 바치는 아멘Amén(부디 그렇게 되기를,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마몬Mamón은 아람어로 '이 확실한 것' '이 안전한 것'을 의미하며, 이는 시리아 상인의 거래의 신이었으나 돈Dinero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다보니 우리는 맘몬이라는 말을 거부감 없이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형제적 관점으로 티와 들보를 묵상해보자면 이렇게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르포스κάρφος는 칩 조각 파편 단편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제의 눈 속에 티가 들어있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어떻습니까? 눈에 티가 들어갔으니 당연히 눈을 슬쩍 감고 다른 형제를 바라보는 장면이 떠오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눈에 티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눈을 감고 슬쩍 보는 모습은 복음에서 누구를 떠올리게 합니까???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가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입성하기 전에 예리코에 들어가셨는데 그 곳에 눈먼 거지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있다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예리코는 달의 도시를 뜻합니다. 그러면 달의 도시 예리코의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눈먼 거지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게 됩니까???? 사람이 기뻐서 활짝 웃으면 눈이 어떻게 됩니까??? 눈이 초승달처럼 지긋이 감기지요. 입고리는 올라가고요.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형제적 관점에서 볼 때에 형제의 눈 속에 티가 들어있는 모습은 누구의 모습과 흡사합니까??? 과히 바르티매오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티에 이어서 들보를 형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습니다. 들보는 그리스어로 도콘δοκόν 원형: 도코스δοκός인데 이는 들보를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광선을 의미합니다. , 레이저빔이라고 할 때에 빔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눈에 들보가 들어있다는 것은 빔이 들어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 뚫어져라 보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즉 마찬가지로 들보는 예리코의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던 제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리코의 눈먼이를 만나기 전에 출세와 섬김을 놓고 서로 눈을 부라리며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르티매오를 만나서 그의 모습을 보고 죄인은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티메오라는 이름은 존경하다 섬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르가 아들이라는 뜻이니까 바르티매오는 섬김의 아들, 존경하는 아들이 됩니다. 제자들이 출세와 섬김을 놓고 다투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들보에 씌어있던 제자들이 섬김의 아들, 존경의 아들인 바르티매오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되었던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태7,13; 루카13,23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좁은 문이 무슨 문이며 어떤 의미일까요??? 티와 들보의 형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좁은 문은 분명 기쁘고 즐거움의 문이 될 것입니다. 늘 기쁘고 즐겁게 웃고 사는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가는 섬김의 아들, 존경의 아들인 바르티메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들보처럼 눈을 뜨고 레이저빔을 마구쏘아대며 형제를 꾸짖는 사람은 볼 것도 없이 구원의 문이 아닌 넓은 지옥문으로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오늘 복음 묵상은 이렇게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야고4,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입법자와 심판자는 한분 뿐이십니다.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그분이십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