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연중제11주간 월요일 마태5,38-42 사랑의 법, 동태복수법 (20230619)

jasunthoma 2023. 6. 19. 05:4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탈출기 21장에 나오는 말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인데 모세가 십계명을 풀이하며 세부적인 규정들을 가르치던 상해에 관한 법구절 중의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동태복수법으로 아시리아왕국의 함무라비법전에 나오는 말인데 이 말은 개별적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권리에서 나온 규정입니다. 이 권리는 보복을 제한하는 장치인데 벌을 죄와 동일시 함으로써 피해에 알맞은 벌을 부과하여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규정입니다. 눈은 그리스어 옵탈모스인데 옵탈모스는 눈이외에 눈꺼풀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어로 오두스인데 오두스는 이, 이빨 이외에 대못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를 같은 의미의 다른말로 하자면 눈은 눈꺼풀로 이는 대못으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는 의미인데 누가 너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또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며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약한 데는 더 약한걸로 해결하고 단단한데는 더 단단한 걸로 해결한다는 의미가 아닐까합니다. 이 규정은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데서부터 가장 세고 단단한 것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되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지향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단순한 법이 가장 훌륭한 법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예를 들면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를 보면 하라와 하지마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마라는 인류의 보편법의 두 실천기둥입니다. 하라와 하지마라를 십계명에 비추어보면 하느님께 하라와 하지마라 그리고 인간에게 하라와 하지마라가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께 두가지를 하고 한 가지를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주일을 사랑하고, 셋째는 헛소리(기도, 맹세, 서원)를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사람에게 해당되는데 사람에게는 첫째 부모를 사랑하고 나머지 여섯은 모두 하지마라는 것 뿐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규정은 하라와 하지마라고 명시됩니다. 하지만 하라는 것보다 하지마라고 명시하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실제로 하라는 것이 많을까요??? 하지마라는 것이 많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하라고 그래서 하는 것 이외에 규정되지않은 것 중에 해도 되는 것이 많을까??? 아니면 하지마라고 해서 하지않는 것 이외에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하지않는 것이 많을까요??? 십계명을 예를들면 하느님 사랑, 주일 사랑, 부모님 사랑은 하라는 법입니다. 이외에 하라고 규정되지 않았지만 하고 있는 모든 것들 중에는 밥을 먹어라, 잠을 자라, 숨을 쉬어라, 걸어가라, 팔을 뻣어라, 등은 모두 개별적인 자신에게 해당되는 일인데 이 행위들은 왜 규정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이것들은 규정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이고 또 하는 것 자체가 모두 자신과 타인에게 이롭고 또한 사회에 이득이되기 때문임을 알 수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지마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것 이외에 규정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독을 마시지 마라, 하늘에 침뱉지 마라, 눈감고 걷지 마라, 눈뜨고 잠자지마라 등도 모두 자신과 타인에게 이롭고 사회에 이득이되기 때문에 하지마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는 가르침은 하라와 하지마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내가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규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는 이롭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모두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한다면 황금율보다 더 좋은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황금율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인데 이는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남에게 해 주어라”는 의미입니다. 즉  모두 하라는 법입니다. 내가 주도하는 법이 황금율입니다. 하지만 황금율을 초월하는 법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할 때에 내가 하고 타인이 원치 않을 때에 하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이는 빗방울이 아니라 바다가 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황금율을 초월하여 완전한 법이 됩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원할 때에 원하는 것을 하고 또 원할 때에 원하는 것을 물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타인과 이웃이 주인이 될 때에 진정한 하느님의 법인 사랑의 법이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