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는 포도밭 주인(소작인)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만약 내가 포도밭 주인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포도밭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세차례에 걸쳐 보냈지만 그들은 종들을 하나는 붙잡아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만약 포도밭 주인이라면 마지막 남은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그 소작인들에게 보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윤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종교적으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당고개성지(신계동)를 다녀왔습니다. 제 출신본당 선배신부님과 그 어머니께서 서울에 잠시 올라오셨다고해서 잠깐 찾아뵌 김에 가까운 성지를 찾아 순례를 했습니다. 이번에 복자품에 오르신 이성례 마리아의 생애를 다룬 성화들이 따로 전시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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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도밭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 조차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마리오 수사님의 포도밭 사도직이 생각납니다. 마리오 수사님은 따로 조경을 하지 않으셧습니다만 당신 나름대로 포도밭을 일구셨다고 생각됩니다.) 즉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이 말은 '나는 나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고로 나는 자녀까지도 아끼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맞는 말 같으면서도 뭔가 좀 미심적은, 뒤끝이 있는, 속시원하지 않는 면이 있는 말인것 같습니다. 윤리적으로는 분명 지탄을 면치 못할 처신이 될 것입니다. 박해시대에 누구는 부모 잘 만나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부모님께 맞겨놓고 평생을 잘먹고 잘 사는데, 누구는 부모를 더 잘 만났는지는 몰라도 부모님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가기 싫은 골고타로 파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만으로 마흔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서른아홉에 참수당하셨구요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그보다 훤신 더 일찍 젊은 나이에 매맞아 순교했습니다. 막내동생이었던 스테파노는 세살에 옥에서 굶어죽었습니다. 이성례 마리아는 박해를 피해서 떠돌아 다닐 때에 이집트로 피난가던 요셉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의 원성을 달랬다고 합니다. 제자들을 빵도 지팡이도 없이 파견시키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도조를 받아오라고 포도원으로 보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안에서는 어떻게 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내 몰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안에서는 이 일들이 가능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 자녀도 아끼지 않음이 가능합니다. 사실은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와 타인을 아끼지 않는다 사이에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자신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래서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 조차 아끼지 않으셨다. 아니다. 당신 아드님은 아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아드님을 아끼지 않으셨다. 즉 아니다 사실은 당신의 자녀를 아끼신다입니다. 당신의 자녀를 아끼심에도 불구하고 아끼지 않으신다입니다. 그렇다면 왜그랬을까요?? 이웃의 벽을 허물기위해서였습니다. 이방인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울타리를 부수시고 길가는 사람마다 따먹도록 내어 놓으시는 초 윤리적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적인 부성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우리를 갈라놓은 벽을 허물지 못하고 우리를 둘러친 울타리를 결코 걷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소출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조차 아끼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인간적 사랑을 허물고 하느님의 사랑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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