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2주간 월요일 루카4,16-30 희년선포의 목적지(성바)

jasunthoma 2014. 9. 1. 05:2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향인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보게하고,

억업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61,1-2; 레위25,8-13)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언자가 어떻게 하였는지를 예를 들어 이야기 해 줍니다.

예를 드신 곳은 엘리야시대에 시돈지방이었고 또한 일리사시대에 시리아 지역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자라신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니 이제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심는자가 따로있고 거두어들이는 자가 따로 있다는 성경말씀은 분명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내가 심지 않았다고해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는데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되고

내가 거두어 들였다고해서 때가 되면 꼭 내가 심어야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리 시대의 징표를 보여주어도 헛수고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코린토1서를 통해서 시대의 징표는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운 말로 하느님의 신비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대의 징표는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말로 듣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말씀을 말씀으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나병에서 치유되고 사렙타 과부가 대기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예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구원되고 치유되는 것은 성령의 힘이 그리하는 것이지 예언자가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벼랑까지 내몰아 떨어뜨리려고 하자 그들 가운데를 가로질러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난 군중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성난 파도와 같은 그 군중들을 갈라 놓으신 것입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것처럼

그래서 희년의 선포는 당신이 자라신 고향에서 먼저 베푸시지만 그곳은 희년선포의 목적지가 분명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죽음의 파도를 갈라 놓으시고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을 이끌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해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생명의 길로 나아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도록 깨어있을 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