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1주간 수요일 성녀모니카 마태23,27-32 항구한 의인(딸)

jasunthoma 2014. 8. 27. 05:2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다고 꾸짖으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도가 아니라 너도로 다가옵니다.

"너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불법과 위선의 상징인 "회칠한 무덤"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했더라면 ~~했을 것이다" 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다 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잘 못에 대한 책임만 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나 의인을 죄인으로 몰아서 죽일 때에는 저자의 피에대한 책임을 우리가 지겠소 하여 선동하지만

죽고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 고인을 위해 고개숙이고 경의를 표하며 추모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죽은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기념하면서도

정작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는 이는 모두 이레동안 부정하게 된다(민수19,16)는 율법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단죄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바로 회칠한 무덤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초지일관 헌신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교회는 성인으로 공경합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녀 모니카도는 믿음 만큼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이단에 빠져 방황하자 성녀는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했습니다.

또 성녀는 다른 성인에게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했습니다.

암부로시오 성인 역시 자기 본분을 끝까지 지키는 성실한 목자였고 한 사람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모친의 가이없는 기도와 암부로시오의 성실함을 보고 방탕한 아들은 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반달족이 쳐들어 올 때 도망가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믿음을 지키며 죽을때까지 성을 지키며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교회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성인들의 항구함을 본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죽음이 깃든 무덤을 차지할 것인가? 생명이 깃든 성전을 차지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성인들의 항구함을 본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시작한 일을 예수님 안에서 마칠 수 있는 시간으로 봉헌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