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사순제2주일 마태17,1-9 축복의 기도(화천)

jasunthoma 2014. 3. 15. 06:27

저의 서품 성구는 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 시편84,5(공동번역) 입니다.

사제 서품 때에 서품 성구를 잘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신부님의 강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기 신부님 한 분이 서품성구를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주님 함께 계시니 두렵지 않네로 정했더니

군종으로 입대해서 제대할 때까지 그늘진 골짜기만 다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신부님은 떠나라 로 정했는데 유학을 가서 우리나라를 10여년간 떠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어렵게 고민한 끝에 서품 성구를 정했더니

부모님이 그건 너에게 너무 힘들어 보이는 말씀이라며 한사코 바꾸라고 만류해서 바꾸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동기 신부님이

그러면 차라리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로 바꾸는 편이 낫겠다고 핀잔을 주더라는겁니다.

 

제 서품성구는 본래 좀 길게 정했었습니다.

사실 서품성구로 정했던 말씀이 아니고 종신서원 성구로 정했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종신서원을 앞두고 40일 피정을 하면서 받은 말씀이 있어서 그것을 종신서원 성구로 하고

수도원에 입회해서 힘들때 정했던 성구를 사제 서품 성구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래는 좀 긴 문장입니다.

행복의 나라로 가기위해 길을 떠났으니 행복한 사람

돌밭길도 들어서면 이미 행복한 길

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 시편84,5(공동번역)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서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보여줄 땅으로 떠나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고 전해줍니다.

이 말씀은 쉽게 이해하자면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으로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모리야 산을 향하여 떠난 것 처럼 예수님도 떠나셨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떠나서 그곳에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우선 아브람을 큰 민족이 되게 하고 이름을 떨치게하여 복을 내리며 또 복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통하여 세상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즉 그곳에서 계약을 받았으니 그곳은 약속의 장소 계약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본래는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가는 곳이 거룩한 장소가 되겠지만 그것은 하느님께 힘을 얻은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거룩한 장소에 가야 비로소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기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등뒤로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산 아래 빛나는 구름속으로 길게 늘어서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도 무지개가 드리우는데 둥근 원을 그린 무지개 속으로 내 그림자가 빨려들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보는 무지개는 반원 정도만 그려지고 나와 상관없이 멀리있지만

높은 산에서는 햇빛과 나와 구름이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에 

빛나는 구름이 만들어낸 원형의 무지개속에 들어있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명이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봐도  모두 각자의 무지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지금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물론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면밀히 읽어보면 제자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빛나는 구름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 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다음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 땅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과 같습니다.

물론 게세마니에서 홀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와는 다르게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홀로 드리는 개인적인 번민의 기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선조들의 염원을 담은 공동체적인 기도입니다.

공동체적인 기도는 응답하는 기도입니다.

선창으로 계를 하면 화답으로 응답을 하는 기도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드린 공동체적인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기도를 하셨길래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음성이 들렸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성부께 어떻게 축복을 받으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축복을 부르을 부르면 축복이 내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사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예언서를 상징하는 엘리야를 통해서 기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성경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여서 성경을 읽고 묵상나눔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공동체적인 기도가 됩니다.

성경의 구절구절은 모든 축복받은 이스라엘 선조들의 기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과 모든 예언서의 골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을 축복합니다는 것을 인간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에게 복을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모두다 잘 되게 모든 것이 다 잘 되게 해 주겠다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자신을 바쳐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해 주십사고 기도하셨습니다.

즉 기도하시는 모습을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티모테오 2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복음통하여 우리는 축복을 받고 또한 축복을 베풀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예수님 안에서 남은 사순시기 동안 축복을 받고 또 축복을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