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사순제1주간목요일 마태7,7-12 우리의 기도(스승)

jasunthoma 2014. 3. 13. 03:2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청해야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좋은 것을 청해야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편하고 쉽고 한가롭고 맛있고 배부르고 여유롭고 가볍고 홀가분하고 먹고 자고 노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만약에 이런 것들이 좋은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이런 일들에 익숙해져서 무병장수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병들고 지치고 쓰러져버립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고 어렵고 바쁘고 맛없고 배고프고 여유없고 무겁고 껄쩍지근하고 못먹고 못자고 놀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살고 있으면서도 무병장수를 누리며 살다가 선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하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넘치도록 후하게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제희 동네에 할머니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분은 여든 여든까지 사시다가 평소대로 아침드시고 밭에 다녀오시고 한 낮에 쉬려고 누우셨다가 임종을 하셨습니다.

손주가 학교 같다가 와서 주무시는 줄 알고 깨웠더니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또다른 한 분은 일흔 일곱까지 사시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이분은 관절염 때문에 하루 종일 방에서 꼼짝도 안하고 들어앉아서 기도만 드리고 계셨다고 합니다.

이 두분의 삶을 종합할 수는 없지만 두 분 다 가까운 집안 어른이시니까 그 살아오신 약력은 온 동네가 훤히 아는 것입니다.

여든 여덟까지 사시다가 선종하신 할머니는 힘든 가운데서도 마음만은 늘 편안하게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10년을 못미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는 마음이 불편했던지 평소에 화를 잘내고 욕을 잘 하시는 분입니다. 몰론 기도도 잘 하셨습니다.

 

사람은 태초에 세상에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청하고 찾고 두르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타인을 의식하지않고 자기 자신만 놓고 본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아주 어렸을 때에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두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또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과 견주었을 때 내게 부족한것이 드러나게 되고 왠지 가진 사람의 그것이 좋아 보이게 된 것입니다.

과연 내게 없는 것을 발견했을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했을때 어떻게 청하고 찾고 두드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좋은 것을 청하는 기도가 되기도 하고 좋지 못한 것을 청하는 기도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즉 나의 기도가 되기도 하고 하느님의 기도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내가 먼저 해 주면 내 기도는 이미 성취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이웃이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이이며 주님의 제자가 아닐까?

 

무엇이든 청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아무것도 청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사악한 풍조가 아닐까합니다.

주님께서는 주어진 것도 활용하지 않는 종에게는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청했는지, 누구를 찾았는지, 어느 문을 두드렸는지를 살펴보고

남은 사순시기가 축복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