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기도하실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뭐 제가 물어본다고 대답하지도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잠시 생각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경건하게 하십니까? 아니면 거룩하게 하십니까?
기도는 때론 경건하게 할 수도 있도 또 때론 거룩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경건하게 기도하는 것이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기도하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 경건하게 기도한다는 것은 다소 조심스럼게 죄인의 처지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경건해 보일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기도한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그리고 겁없는 마음으로, 또는 확신에 찬 마음으로 기도드릴 때 거룩해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누구라고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은 종신서원자의 기도는 경건하게 보이고
우리 청원자 루카형제의 기도는 거룩하게 보입니다.
청원자 형제의 기도는 왠지 확신에 차보이기 때문입니다.
뭐 전후 상황없이 기도만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카형제가 기도할 때에는 언제나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봉헌생활을 하면 할 수록 기도하는데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갈수록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무덤덤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것은 확신 없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차지 않으니 계속해서 들추어 보려고 합니다.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두 귀로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더라도 또 그렇게 듣더라도 우리의 두 눈은 제대로 볼 수 없고 우리의 두 귀는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는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사가는 아예 얼굴에서 직접 빛이 태양처럼 찬란하게 뿜어져 나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거룩하게 기도하셨길래 그토록 새하얗게 변모되었을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줄곧 거룩하게만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산에 오르시자마자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시는 중에 그렇게 변모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걱정스런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기도를 시작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경건하게 기도를 하시다가 태양처럼 빛을 발하며 거룩하게 변모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나누셨던 대화에 잠시 머물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실 때 그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즉 세상을 떠날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죽을 일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중이지만 어느누가 자기가 곧 죽게 될 것인데 얼굴 빛이 햇살처럼 환하게 비칠 수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확신에 차서 미소지으며 기도하다가도 내가 죽게 되기라도 한다면 어느새 환한 미소는 사라지고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말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때로는 경건하게 그리고 때로는 거룩하게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묵상하게 해줍니다.
경건한 우리가 거룩하게 변모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거룩한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기도가 어떤 상황에서든 확신에 찰 수 있는 기도가 될 수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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