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부활제5주간 월요일 요한14,21-26 사랑의 성령(스승)

jasunthoma 2013. 4. 29. 03:13

요즘은 인터넷을 비롯하여 모바일 쇼핑이 증가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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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증정이라해서 무상으로 주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속샘이 있습니다.

선물을 받는데 조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을 구매해야만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일식 삼찬이면 충분한데 화려한 뷔페 이용권을 사도록 강요하는 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성령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데 "파라클리토(Paraclito)"이십니다.

이를 번역항때 새성경에서는 "보호자"로, 공동번역에서는 "협조자"로, 그리고 바오로가족 기도서에서는 "위로자"로 번역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얼", "숨결", "바람", "거룩한 영" 등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구약의 성령은 독립된 체격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의 마음을 평화와 화목, 지혜와 진리, 힘과 용기와 사랑을 주시는 분으로 모호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신약의 성령은 온전한 위격체로 분명하게 파라클리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라클리토이신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하지 않고서는 강림하지 않으십니다.

즉 이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성령을 어떻게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성경말씀을 나누셨을때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실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나눔입니다.

무상의 나눔, 헌신적인 사랑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누고 빵을 떼어 나눌 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리스트라에서 첫 복음선포를 할 때에 앉은뱅이를 치유하게되자 사람들이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자기 옷을 찢으면서 외쳤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는 자칫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떼어 나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궁핍해 짐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말씀이 되었건 빵이 되었건 육적인 한계를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영적인 보화를 충만히 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새계명이 완성되는 시간이기때문입니다.

사랑의 성령을 받는 시간은 많은 기름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기름이 등잔을 꺼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사랑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