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이태리에 다녀온 수사님께서 마리오 수사님에 관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책상에는 한글로 써놓은 형제들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매일 거기에 앉아 한국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며 눈물 짓곤 한다는 겁니다.
마리오 수사님이 48년간 한국에서 하신 일은 목수일이었습니다.
목수라고 해서 나무로 책상을 만들거나 빼담짜는 일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막힌 변기와 정화조 배관을 뚫는 일에서부터 새는 지붕을 막고 페인트 칠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궂은 일은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입회한지 얼마 안된 형제들이 멋도모르고 이태리말이라도 한마디 배워볼까하며 다가가서 묻기라도 하면 지체없이 짧은 한국말로 일축하십니다.
"말 필요없고 일 하고싶은 마음만 있으면 돼요!"
마리오 수사님은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팔순을 앞두고 한국을 떠나실 때에는 많은 말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마이크를 잡더니 40분가량을 이야기 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과 성모님께 의지하며 기도하고 일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에는 언제나 침묵으로 말했습니다.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검정 구두, 토끼똥 냄새를 머금은 펑퍼짐한 바지, 불룩한 배를 단단히 움켜쥔 허름한 벨트, 그리고 용접 불똥이 굴러들어간 구멍난 남방이 언제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리오 수사님의 거친 손을 잡는다면 지금까지 눈으로 보았던 청빈한 외모가 남을 의식한 겉치레가 아님을 단숨에 느낄 수 있습니다.
잘리고 찢기고 터져서 마디마디가 성한 곳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두 손에서 전해지는 진솔함이 수사님이었습니다.
그러던 분이 이제는 모든 것을 놓으시고 한국 형제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는 일에만 전념하고 계신다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땠길래 그토록놀랐을까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며 자연스레 예수님의 부친 요셉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요셉은 말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약혼하였을 때에도 이런 저런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남몰래 침묵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매일 돌과 나무를 지어 날라야 했으므로 많은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기에 맞추어 농사도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기르고 자르고 짜맞추는 일에 능통한 장인을 일컬어서 목수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장인이자 목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이 오늘은 회당에서 무엇인가는 몰라도 가르치십니다.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셨길래 사람들이 탄복하며 놀랐을까요?
본문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에 지혜와 기적의 힘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때에 지혜와 기적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까?
요셉은 모든 사물을 능통하게 다루는 목수였지만
그의 아들 예수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물론 부친 어깨너머로 목수일도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예수님이 그렇게 자신처럼 목수일만 하며 성장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일 때부터 줄곧 요셉은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목수 일보다는 사람의 영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다스리기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이 육을 다스리지 육이 영을 어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마저 버리고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결코 사람의 영혼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육신의 수고로움을 내어드리고 우리의 영혼의 안식을 돌려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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