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야기

침묵 - 엔도 슈사쿠

jasunthoma 2008. 12. 9. 16:51

선교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한 그루의 나무가 밑동째 베어지고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는 날 비로소 선교는 시작된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이래 동양에서 가장 좋은 씨앗이 뿌려진 일본에서 통솔자를 잃고 점차로 힘을 잃어 가고 있는 신자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도 방관한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당시 유럽인의 눈으로 본다면 세계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 작은 나라에서 페레이라가 배교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의 굴욕적인 패배”처럼 생각되었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써 본분에 충실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난 열정이라 생각된다.

 

배교라는 것은 순전히 선교사의 잘못만은 아니다. 선교지에 나가서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금지시킨 이상 계속 활동한다는 것은 이미 순교를 전재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적 탄압이 발생했을 때 순교의 칼을 달게 받는 사람이 있고, 입으로만 배교하고 숨어 지내며 신심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고, 완전히 배교한 것도 모자라서 박해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숨은 신자까지 밀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뱀과 같은 교활성으로 교묘한 방법을 써서 그때까지 고문이나 협박에 굴치 않았던 신자들을 속속 배교시키”며 동족들을 처단하는 것을 권력유지의 빌미로 여기는 자들이다. 한때는 잘 나가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입교시키느라고 열성을 다하던 사람들이 배교를 해서 이웃을 고발하면 이보다 더 분통 터질 일이 또 있을까. 그럴 때 슬픔은 극에 달할 것이다.

 

처음에 모든 것이 열려있을 때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그나마 어려움 중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성직자로서 선교지로 떠날 때의 마음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보람 있는 일”이며 선교지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선교지에서는 “해도를 잃고 폭풍의 바다를 떠도는 배”와도 같이 역경 속을 항해하는 처지일 것이다. 또한 옛날에 못지않게 신자와 성직자의 관계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도 곤란한 점일 것이다.

 

 하지만 박해로 인해 몰래 숨어서 신앙생활을 할 경우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옳은 지는 경험을 통해서 명확해 질 것이다. 혹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는 선교사들의 머릿속에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가져다주는 신부나 수사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해도 점차 희망을 잃고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위험한 파도를 넘고 가는 것은 오히려 값진 일”로써 비쳐지기도 할 것이기에 사력을 다해 정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고국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부님은 선교지에서“무서운 침묵을 느끼자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이 지상에 행복이나 요행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해도 그는 백주의 이 무서운 침묵이 마을에서 빨리 사라지기를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지도를 통해 보았고 주교님과 동료 사제들에게 이야기로 들었을 뿐 도착하기까지는 상상만 더해졌을 뿐 생소한 환경과 마을 분위기를 목격하고 더욱 조바심이 생겼을 것이다. “박해가 일어나 오늘까지 20년이 흘러도 이 땅에 많은 신자들의 신음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신부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무너져 가는데도 하느님은 자기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앞에 하고도 여전히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 것”이라 생각하면 앞으로 일어날 더 끔찍한 일들 앞에서 무력한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느낌마저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배교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침묵이라는 무거운 사랑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밀고한 기치지로의 어리석은 한탄에는 하느님의 침묵에 대한 원망이 포함되어 있듯이” 신앙을 지키기란 선교지의 사제나 신자들 모두 상상하던 것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순교는 혁혁한 것이 아니고 비참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바닷가 말뚝에 묶여 죽기까지 아니 죽은 뒤에도 바다는 무섭게 침묵만 지키고 있음으로 더욱 절망적”일 것이다.

 

만일 순교한 사람 앞에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더욱 초조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그것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돌이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뛰어 넘지 못할 시련은 결코 내려 주시지 않는다. 주님 곁에서 앞서 떠난 수많은 이 땅의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영원한 지복을 누리고 있을 거라고 나 역시 확고히 믿고 있었다”라는 신부님의 생각은 변치 않는 진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신음하고 고통을 겪고 죽어간 자들의 바다가 오늘도 어둡고 단조로운 소리만을 내며 바닷가에 철썩이고 있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이 바다의 무서운 침묵 뒤에 하느님의 침묵이 있기 때문”이라며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느님이 사람들의 비통해 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그저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 것과 아무리 신앙을 갖고 있다 해도 육체의 공포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엄습해 오는 두려움”은 마음의 한결에서 생겨난다. “가장 큰 죄는 하느님에 대한 절망감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당신의 자녀들이 절망하도록 하느님은 침묵만을 지키고 계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신부님은 자신이 당하게 될 고문 앞에서 변호를 요청하고 싶은 심정임을 토로하기에 이른다.

 

결국에는 선교지에서의 역경을 “받기 싫은 물건을 강제로 떠맡기는 것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바로 이렇게 강요된 물건과도 같았다. 그들에겐 그들의 종교가 있고 그런대로 잘 살고 있으니 이제 와서 외국의 가르침이 필요 없어졌는지 모른다. 선교사들이 신학교에서 사명을 다하여 가르친 것들이 지금에 와서 그들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기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왔음을 늘어놓기에 이른다. “내가 배교했음에도 나는 이 나라에서 도움이 되고 있고,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유일한 소원이며 꿈일지 모른다”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려지만 어딘가 모르게 베어있는 고독감은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며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순교의 칼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배교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배교한 것을 잘못으로 뉘우칠 수 있는 회심이 필요하다. 끝까지 배교한 채로 살아간다면 어떤 설명도 변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선교란 아주 그 나라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만 토착화했다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밑동째 베어지고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는 날 비로소 선교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뿌리 내리지 못할 곳은 없으며 좋은 땅에 좋은 씨가 뿌려지면 백배의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의 뿌리이며 땅이 좋지 않다고 하여 곧 변해버리는 진리가 아니라 변치 않는 영원한 진리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