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15,3-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었던 내 양을 찾았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잃었던 한 마리의 양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잃었던 양은 백마리의 양 가운데에 한 마리 양이었습니다.
우선 백마리의 양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 제2독서 로마에서는 네부류의 하느님 백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건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2.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3.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4.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은 “불경건한 자”, “의로운 이”, “착한 사람”, “죄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오로는 “불경건한 자”와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원인을 제공하는 부류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잃었던 한 마리의 양은 사악하면서 불경건하여 회개할 필요가 있는 죄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흔아홉명의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는 곳이 곧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동료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내몰린 한마리의 양과도 같았습니다.
- 그 내몰린 양은 광야 어딘가를 방황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될 양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창세기 22장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흔아홉살에 이사악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에 그의 나이는 백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태어난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렇게하여 기적적으로 태어난 이사악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다시 예전처럼 아흔 아홉살 때의 방황하는 처지,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모든 것을 포기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위에 올려놓고 손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천사의 말을 듣고 멈추어 아브라함이 눈을 돌려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양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양을 끌어와 아들대신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양은 처음부터 길을 잃고 광야로 내 몰린 양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악대신 번제물로 바쳐질 양이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데려온 양이었던 것입니다.
백마리의 양과 함께 풀을 뜯을 때에 풀을 뜯고 길을 걸을 때에 길을 걷던 착한 양이었습니다.
그 양이 바로 예수님 당신 자신이셨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에 흩어져서 방황하는 양들을 교회로 모아들이고, 하느님의 자비하신 손길이 우리의 사도직을 통하여 완성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50627 바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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