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일곱가지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그중에서 특히 개종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심하게 비판하시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살았던 시기에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는 유대인들의 노력이 최대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바다와 뭍(땅)을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열정이죠. 바오로사도를 생각하면 이해하고도 남을 열정이 아닐까합니다. 1세기 중반 유대인들의 인구가 100만 명 정도 증가했다고 하는데, 시대적으로 2천년 전인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증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 증가도 지난 70년동안 16만명(1953년 첫 통계)에서 지금은 거의 600만명(2023년 통계)으로 엄청난 증가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전 초세기에 유대교인이 100만명이 증가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 인구가 급증하게 된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유행하던 다신론 종교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유일신의 유대교에 관심을 가졌고 또 유대교가 가르치는 유일신 종교만의 독특하면서도 엄격한 규칙(613계명 긍정248/부정365)들과 여러 가지 절재된 규정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 3백년간 이어진 그리스도교 박해 또한 유대교가 급증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며 오늘 복음을 읽어본다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한 사람이라도 개종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불행설교(23장-25장)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선교활동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개종자들을 얻으려고 어떤 노력들을 했습니까??? 바다와 뭍(땅)을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불행설교에 의하면 먼저 그들은 이마에 성구갑을 매달고 다닙니다. 그리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고 다닙니다. 그리고 한 길 모퉁이에 꼿꼿이 서서 기도합니다. 또 기도는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길게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큰 업적으로 여기는 것은 뭡니까??? 바로 “할례”입니다. 물론 그당시 유대교 개종의 4대 조건(1. 교리교육 2. 할례 3. 세례 4. 예물봉헌)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할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할례에 관해서 직접 언급한적은 없습니다만 그당시 할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사도바오로조차 할례에 관해서 갈라6,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하는 자들, 그자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려고 그리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그들 자신도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몸에 한 일을 자랑하려고, 여러분이 할례 받기를 원하는 것뿐입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유다교로 개종한 것은 자의가 아니라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습니다. 할례를 받아들이면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그러한 박해가 얼마나 터무니 없었으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이제는 할례를 받지 않고 계명을 지키는 이들이, 할례를 받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심판할 것입니다.(로마2,27) 이렇게 하여 바오로 사도에 의해 할례라는 유대교만의 유일한 표징은 허물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대교에 비해 그리스도교가 더 나은점은 무엇일까요??? 없습니다. 십자가라는 비웃음과 조롱과 고통밖에 없습니다. 유대교에서 그토록 박해하고 할례를 강요할 때에 초대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했습니까??? 비굴하게 숨어지내며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초대 교회를 지킨 사람들은 어떤 종교가 평화와 자유와 박애의 정신으로 우리 육신을 구원하고 또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지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가톨릭교회의 다른점은 무엇입니까??? 유대교가 개종을 강요했다면 가톨릭은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 점이 다른 점입니다. 가톨릭은 박해시대에 몰래 숨어서 신앙을 이어온 종교이기에 다락방 종교와도 흡사합니다. 가두선교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너무나도 조용한 사람을 보고 혹시 저 사람은 가톨릭신자가 아닌가???하고 관심을 가지면 그것으로 선교는 성공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강요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너무 무관심한 것,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선교방법이 아닐까???합니다. 그러다가 선택을 받고 입교를 하게되면 가톨릭 교회는 "입교자"들에게 무엇을 줍니까? 가장 먼저 무엇을 줍니까??? 묵주를 줍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진리의 총체인 교리를 선물합니다. 가톨릭 교리야말로 그리스-로마시대 화려했던 다신론 종교를 거쳐서 유일신 유다교의 독특하면서도 절재된 613계명들을 단 2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간소화해서 하느님과 인간과 세상이 하나의 신비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하느님의 지혜의 총체입니다. 그 지혜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찾게 되면 그들에게 묵주를 쥐어 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회의 선물인 교리를 선물로 건네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신경(믿음) 2. 성사(신비) 3. 계명(소명) 4. 기도(생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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