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13주간 토요일 마태9,14-17; 마르2,18-22 (240706 바딸// 250120 스승)

jasunthoma 2024. 7. 6. 05:05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왜 단식을 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세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먼저 당신은 혼인잔치의 신랑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새천조각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새포도주이기 때문에 단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몰라본 요한의 제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단식을 하는 요한의 모습과 바리사이의 모습 그리고 단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서로 다른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같은 모습으로 단식을 한다며 율법 준수를 강조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단식을 하던 요한과 바리사이의 모습도 서로 상반된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마태3,4)다녔고, 바리사이들은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 옷(마태23,5)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오늘 비유에서처럼 헌조각처럼 넝마나 누더기로 된 옷을 입고서 단식을 했을 것이고, 바리사이들은 술을 길게 늘인 옷을 입고 이마에 성구갑을 달고 단식을 했을 것입니다. 단식은 같이 했지만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단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변모 장면에서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9,3)고 했는데 그 만큼은 아니겠지만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은 최소한 하얀 천으로 만든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얀 옷을 입고 다니며 단식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은 요한이나 바리사이처럼 메마른 광야의 예언자나 허물어진 성전의 관리자가 아니라 신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혼인잔칫 집에 도착한 신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의 옷은 새 천조각처럼 하얗고 뻣뻣했으며 그분의 포도주는 늘 맑고 투명하면서 신선한 향기가 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다면 굳다고 할 수 있고,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면 희다고 할 수 있다(논어제17편,양화7장)는 논어의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매일 식탁에 앉으셨으나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율법 속에 있었으나 율법에 물들지 않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바로 신랑이라는 특수한 신분이 그분을 그토록 자유롭게 만들지 않았을까???합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단식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을 충실히 즐기고 기뻐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지 않을 메시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오시는 신랑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신랑은 오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나 공부가 그리고 사도직과 청빈의 영성이 지금, 현재, 바로 오늘을 위한 준비가 되어야지 내일이나 훗날, 혹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어서는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염없이 피정하고 날새도록 연구하면서도 오늘 오시는 신랑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러한 영성은 이미 묵은 포도주, 굳어버린 포도주로 변한 다음의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는 기쁨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과묵한 바리사이나 요한의 제자들처럼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어린이처럼 그리고 새신랑 새신부처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