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에게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자 그들의 희망이 사라진 것을 알고 그냥 집과 일터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슨일이냐?”하고 물으시자 두 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힘있는 예언자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어야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님과 엠마오 두 제자와의 대화를 보면 구약성경을 하나로 묶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실마리는 “나자렛 사람”은 – “예언자”이며 – “그리스도(해방자)”라는 연결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유다인들은 그분의 제자들을 일컬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나자렛 분파”(사도24,5)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유다인대로 적개심때문에 나자렛과 그리스도를 연결지으려하지 않았고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예언자들이 나자렛이라고 말한 그리스도를 믿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을 믿는데 어찌 이리 굼뜨냐?”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이사야11,1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 대목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루터기에서 나오는 햇순과 그 뿌리에서 움트는 새싹입니다. 여기에서 햇순과 새싹이 네세르(neser)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네세르는 나자렛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는 “보다”와 “인식하다”라는 동사를 주의 깊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제자들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이상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세상으로 건너가셨고, 이 새로운 세상은 우리의 감각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모습과 믿음의 빛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분의 몸은 비록 그 자체와 동일하지만, 그 외적인 형상은 다른 모습을 지닌 새로운 상태에 있고(마르16,12) 이 세상의 감각적 조건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영광스러운 몸의 상태(1코린15,40+)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복음에서는 그러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인식하는 데에는 네가지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성경 해석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본문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을 하나로 묶는 실마리를 발견하고 역사 전반에 걸친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봉헌입니다. 셋째는 축복입니다. 넷째는 떼어 나눔입니다. 이렇듯 성경과 성찬례를 통해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겪은 일을 믿게 되었고 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는 성경 말씀을 통한 믿음입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설명하실 때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줍니다. 하지만 함께 나누는 빵과 포도주의 성찬례는 말씀이 전해주는 믿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눈이 가리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이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기까지는 말씀과 성찬이라는 친교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실마리가 되는 이야기들을 하며 살아갑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당신의 몸을 떼어 주신 성찬을 기억하며 살아갑니까???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난다”(1코린15,44)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머물며 주님의 부활을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한머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해 부활제3주간 수요일 요한6,35-40 (20240417 성바) (0) | 2024.04.17 |
---|---|
나해 부활제2주간 목요일 요한3,31-36 (240411 스승/ 행운동성당// 160403 ---) (0) | 2024.04.11 |
나해 주님수난 성금요일 요한18,1-19,42 새신랑 새신부 (02240329 성바) (0) | 2024.03.30 |
나해 성주간 월요일 요한12,1-11 라자로의 부활 (20240325 부산협력) (0) | 2024.03.24 |
나해 사순제4주간 토요일 요한11,45-56 (240323 선한협력// 250412 바딸) (1) | 2024.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