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라자로를 살리신 다음에 이어지는 복음인데 먼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잠시 생각해 보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기 위하여 돌아가신다는 의미를 함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라자로를 살리기 전에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는가?”입니다. 또한 마르타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사람들이 했던 말처럼 "정말 예수님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는가???"입니다. 죽은 다음에 살리실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아예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는가??? 라는 물음입니다. 눈먼이의 눈을 뜨게 해 주신분께서 라자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어서 묻히고 나니까 그제야 눈물을 흘리시며 다시 부활을 시키시는가???입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라자로가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라자로야 부활하여라’가 아니라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입니다. 그러자 라자로가 걸어나왔습니다. 일어나다 부활하다는 의미의 아나스타시스와 다릅니다. 걸어가라는 말은 즉 손과 발이 묶여서 여기 무덤에 영원토록 미이라가 되어 묻혀 있지 말고 다시 살아나서 하느님께로 향한 여정을 계속해서 걸어가라는 의미입니다.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태로 영원히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 이어지는데, 대사제인 카야파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카이파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의 계획이 왜곡되어 잘못 선포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카야파의 계획을 알아차리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그곳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시며 카야파의 입을 통해 잘못 선포된 하느님의 계획을 수용하십니다. 이 밀알 하나의 역설적인 말씀은 죽음으로써 얻게되는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한 죽음의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자 서로 흩어지지 않기 위하여 인간 중심의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인간을 흩어지고 사라지게 만드시는 하느님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쌓은 공든탑이 영원히 지금 그대로 안전하게 보관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사람들이 당신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세상은 얼마나 인간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올 날에 성취될 일을 앞당겨 실현시키시기 위하여 당신 친히 십자가위에 매달리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바오로인도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면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품을 수 있기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이 당신을 통하여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열심한 사람이 열심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바오로가족 기도서 255쪽, 교회일치를 위해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몰약은 코미포라라고 불리는 나무에서 유래합니다. 코미포라 나무는 흥미로운 나무입니다. 그것은 가시가 있는 나무입니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인도에서 자랍니다. 코미포라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면 그곳에서 수액이 나옵니다.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은 즉각적으로 tear라고 불리는 것을 형성합니다. tear는 공기와 닿아 검붉은 색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몰약입니다. 몰약에서 추출한 추출물은 소독제입니다. 몰약은 상처를 깨끗이 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강력한 치유제이며 예수님 시대에 가장 강력한 치유제 중 하나입니다. 아주 향기로운 향수로 만들 수 있지만 가장 큰 용도는 죽음에 있었는데 향료로 만들어 인체의 부패 냄새를 압도했습니다. 그래서 가시로 왕관을 쓴 몰약나무에 짖눌려 흐르는 피는 죽음을 이겨내는 치유의 피를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시로 왕관을 썼습니다. 죄로 얼룩진 영혼들을 정화하기 위하여 가시나무 상처에서 진홍색 피, 치유의 피, 정화의 피를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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