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실현가능한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어떻게 실현 가능할 수 있을까??? 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프쉬케-영혼(목숨)은 버릴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마-육신은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영혼과 정신과 마음과 생각은 하루에도 골백번 버리고 잃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육신만은 버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합니다.
여기서 목숨은 프쉬케ψυχή로 사용되었는데 프쉬케는 창세1,2에서 "하느님의 영" "루아흐"에 속하는 영인데 "루아흐"는 프네우마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프시케-목숨은 시편에서 인간적인 영에 사용된 네페쉬와도 관련이 있는데 네페쉬 또한 프네우마로 번역되었습니다.
먼저 창세기의 루아흐는 프네우마πνεῠμα로 번역되었다고 했는데 프네우마πνεῠμα는 (소마σώμα육신과 프쉬케ψυχή영혼)을 포함하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공기, 바람, 숨, 호흡, 생명, 영혼, 정신, 영적존재, 천사 등을 의미하는 "하느님의 영"과 같은 영입니다. 이 "영" "루아흐"는 창세기 1,2에서 말하는 말하는 것처럼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던 영입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말하는 영은 네페쉬라고 했는데, 이는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하는 시편22장 본문에서 마지막 구절에서 "내 영혼은 그분을 위하여 살고"라고 절규할 때의 “영”입니다.
다만 창세기의 루아흐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영인 반면에, 시편의 네페쉬는 생물학적 사람의 생동하는 기운과 냄새를 포함한, 영의 인간적 의미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시편22장의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를 절규하듯이 외치셨는데 마태오 복음 27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그리고 숨을 거두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숨을 거두셨다에서 "숨"은 오늘 복음에서의 "프쉬케-목숨"과는 다르게 시편22장의 네페쉬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에 당신의 "영"이 아버지의 "영"을 의미하는 프네우마로 옮겨졌습니다. 자기자신의 영을 아버지의 영에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우리 창립자의 DF9에서 언급하신 "그분께서 내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 .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도록 해야한다"는 이 두 구절을 통해서 실현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Donec Formetur Cristus in vobis 갈라4,19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내 목숨이 하느님의 영에 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내안에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가 말했듯이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 (로마14,8)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시대에 수도자들이 사도적 꿈을 꿀 수 있는가? 있다면 그 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도미니코 솔리만 총장님의 질문)
일생을 하나의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봉헌초(밀납초=하나의목적/ 전등초=다목적), 미사경본 (종이텍스트=하나의목적/ 아이페드=다목적), 신앙생활과 성직생활 그리고 수도생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적으로 세상에 봉헌된 이들이기에 현대시대에 자기목숨을 잃는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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