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와서 이러이러한 말을 전했을 때에 예수님은 어떠한 심정이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조금 긴장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들을 읽다보면 몇몇 특정 부류들은 자주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들과 예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서로 긴장된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우선 세부류의 긴장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만남// 그리고 예수님과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이나 또는 요한의 제자들과의 만남에서 상호간의 긴장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누구는 누구를 만나면 긴장하고 또 누구는 누구를 만나면 긴장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방법은 없지만
제 관점으로 봤을때에 대체적으로 첫번째 예수님과 예수님 당신의 제자들 과의 만남에서 긴장하는 쪽은 항상 예수님의 몫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본디 무식한 사람은 긴장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편합니다.
제자들은 무식했고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할 때에 항상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긴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 또한 예리코의 눈먼 거지를 만났을 때에 무지 긴장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거지가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그 거지를 통해서 볼때 매우 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의 만남에서 긴장하는 쪽은 항상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 쪽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처럼 요한이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는 서로 상호간에 긴장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실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제자들을 보내어 여쭙는 요한의 초조한 모습과 더불어
그렇게 여쭙게 된 이 질문, 요한의 이 물음에 따라 예수님께 미친 영향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듣게되자 예수님께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셨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의 반응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 .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요한이 불안하고 긴장했던 것은 어쩌면 자기가 한 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언자 요한의 예언이 빗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다른점이 있다면 요한의 삶은 언제나 기도하고 일하는 삶이었다면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일하고 기도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기도하고 일을 하면 기도한 대로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기도 할때에 걱정스러워질 수가 있고 이어서 기도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일할때에도 긴장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일한대로 기도를 한다면 아무런 걱정이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하신 창립자께서도 언제나 실천으로 말씀하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 많은 제자들의 궁금증을 일일이 다 말로 설명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AD93. "바오로가족은 사도의 모후 눈길아래 성바오로의 정신으로 길진리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살것을 열망한다"
살것을 열먕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일한 만큼만 기도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지만 예수님의 일생을 돌아다보면 항상 일을 하신 만큼 그만큼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도가 너무 하고싶어서 성당을 가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안돼 기도하지마 기도하려면 먼저 가서 일을 하고 와라고 하시지는 않지만 그만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근심 걱정을 모두 주님 손에 맞겨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14 루카7,18-23
대사제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은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찾아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고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어디있는지를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히 말해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기적을 보여주시며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하고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냥 이름 석자만 불러준다고 내 존재가 환히 비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무엇때문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내 신원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빨리 진급하여 고위직에 오르는게 삶의 목적일 수 있고,
부모로서 자녀를 잘 양육하며 평범하게 사는게 삶의 목적일 수도 있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상풍파에 휩쓸리기 쉽고 사랑하는 사람과 본의 아니게 멀어져서
홀로 공허한 마음만 쓰다듬어야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확신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느님의 지혜를 찾고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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