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대림제1주간 수요일 마태15,29-37 열의에 찬 사도직(스승)

jasunthoma 2015. 12. 6. 09:12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라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생즉필사 사즉필생) 이라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격언이기도 한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충무공이 천주교 신자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사자성어로 옮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는데. . .

복음 묵상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거기까지만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라는 마태10,39; 16,25; 6,25이하에 나오는 성경말씀을 사자성어로 생즉필사 사즉필생 이라고 옮겨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결국 생명을 얻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목숨을 얻기 위해서 먼저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자들과 군중들이 언제 목숨을 잃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듯이

병자들과 군중들이 예수님을 만나 언제 땅에 떨어져 죽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오늘 복음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 띠로와 시돈지방에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인 (식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핥아 먹는 강아지의 비유) 에 탄복하시고 이어서 갈릴레아 호숫가로 돌아오시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호숫가에 머물지 않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발치에 그들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놀라거나 피하지 않고 그어떤 불평도 없이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사흘 동안을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엎드려서 사흘동안이나 죽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 군중들이 가엾구나 하시며 그들이 길을 가다가 쓰러질지도 모르니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목숨을 구한 병자들이 아니라 병자들을 데리고온 사람들, 군중들까지 염려하십니다.

그들 또한 병자들과 함께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묵묵히 죽은듯이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몫이었던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마리조차 모두 그들에게 나눠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바구니에 가득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 남은 일곱바구니의 빵조차 따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다가 쓰러질지도 모르는 병자들과 군중들의 몫으로 모두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 군중들이 가엾구나" 하신 예수님의 측은지심/ 연민/ 동정심에 잠시 머물러봅니다.

연민이라는 단어를 컴패션(compassion)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요즘은 구호활동, 보호활동, 보존활동, 연대활동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군중들을 향한 연민은 군중들의 활동과도 연결되는데

병자들을 구조한 이들에게 "저 군중들이 가엾구나" 하는 연민을 느끼게 된 것은 그들의 열의와 열정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열정(패션passion)은 연민(컴패션compassion)을 불러일으키고 컴패션은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자면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하늘이 감동하여 연민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또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어떤 열의와 열정으로 기도와 사도직을 하는지를 살펴보고 깨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도직을 하고 또한 무엇보다 기도 안에 열의에 찬 사도직을 초대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평화 ] 20071206

저는 죄인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주님만을 따르고자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당신께만 매달리는 은총을 주소서.

시작이 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이 죄인에게 주신만큼 당신께 바쳐질 수 있게 하소서.

저를 품꾼으로 쓰시되 평화를 주시옵소서.

장차 죽을 때까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아궁이 속을 뜸 들이는 숯불에서 평화를 발견하게 하소서.

저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저는 주님을 애타게 찾지 않습니다.

내 잇속만 채우려고 합니다.

벌써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묶여있습니다.

그건 세상의 온갖 단맛을 한 입에서 느끼려는 욕심입니다.

가난한 이웃의 밥그릇을 탐하려는 마음이 아직도 있습니다.

거기에 평화를 두른 것이 제 본마음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종으로 살기에도 부족함을 느낌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외면할 용기도 없습니다.

살아생전에 헤어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보다

제가 세상과 헤어지는 날까지 당신 곁에 있기를 허락하소서.

잠깐 혼란한 생각을 맑게 해주시되 늘 혼란 속을 헤매게 하시고

잠깐 지친 육신에 생기를 주시되 늘 노동에 찌들리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가 곁에서 흐뭇이 즐거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