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29주간 수요일 루카12,39-48 만족과 부러움(스승)

jasunthoma 2015. 10. 21. 13: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도둑처럼 올 것이니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 만큼 더 청구하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달리 말하자면 많이 가지려 하고, 많이 맡으려 하고, 많이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말씀이 부담이 되는 분들도 있고

이 말씀이 위로가 되는  분들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사제서품을 받은 것이 부담이 되기도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부담이 되는 부분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러한 몇가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딱 사제서품만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입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많이 차지한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많이 청구하시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책임질 일은 하지 말고 부담되는 일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부담을 느끼는 것은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준비된 사람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그것을 도둑맞은 거나 다름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깨어있다는 말은 곧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가 평소에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요즘 막다른 벽에 부딧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멕시코 까를로스 신부님이 9월 30일부터 낼모래 23일까지 한국공동체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중입니다.

까를로수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보니 깨어있다는 것의 의미를 또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깨어있다는 의미는 듣고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들리지 않으니 바디 랭귀지 조차 불가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 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말씀은

요즈음 저에게 탐욕을 조절하라는 위로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행복은 탐욕에는 반비례하지만, 부러움엔 비례합니다.

행복은 도둑들도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다면 도둑들도 찾지 않는 다는 말과 같습니다.

탐욕쪽에서 보면 탐욕은 그 자체로 탐욕의 대상이 깨어있지 못하도록 해야하기에 행복하지 못하지만

행복쪽에서 보면 부러움은 서로 깨어있도록 준비하기 때문에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만족할수 있는 것은 만족하고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은 부러워해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