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성삼위에 관하여 조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의미는 다름아닌 성삼위가 우리 안에서 일치는 이룬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는 가서 삼위이시며 일체이신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와 보호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톨릭교회 교리의 핵심인 3중 믿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세례받을 때에 무엇을 믿겠다고 서약했습니까? 우리는 세가지 기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즉 창조주이신 성부와, 구세주이신 성자와, 성화주이신 성령께 대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흠숭하는 한분이신 하느님은 이 세가지 신앙고백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삼중 믿음으로 교회는 일치되고 확산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감도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다 라는 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속 이야기들 중에서 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단연 아버지와 아들로 구성된 돌아온 탕자 혹은 잃었던 아들이라는 루카복음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닐 기유메트의 "땅끝까지"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재력가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 밑에서 온갖 혜택은 다 누리면서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골칫거리 외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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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열한제자가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간 이유는 예수님을 뵙고 경배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뵙고 경배드리는 중에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직접 오셨지만 예전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오셨음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옛것은 가고 새것이 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이들은 묵은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과 같습니다. 새술을 새부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새사람이 되기 전에는 당신의 새술을 묵은 부대에 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부대가 터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새술이 쏟아지는 것보다 오히려 헌 부대가 터져버리는 것에 더 마음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고생시키려고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성삼위 안에서 일치한 사람은 아무리 세상이 돌밭길 가시밭길이라도 행복합니다. 서품성구 "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시편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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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쁜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여기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성전에 주님을 모시고 기뻐하며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전교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10,15; 이사52,7) 여러분들은 바깥에 나가면 주로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묵주의 기도 그러면 집안에서는 주로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묵주의 기도 그렇다면 혹시 성당에 가서 미사전까지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묵주의 기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기도안에 머물러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이번달을 묵주기도 성월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혹시 기도문중에서 가장 완전한 기도는 무슨 기도인지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말 그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무슨 기도일까요??? 먼저 말씀드렸다시피 묵주의 기도입니다. "성모송" 그렇습니다. 성모송입니다. 성모송은 에페소 공의회(테오도코스 Theodokos : 천주의 어머니) 와 관련됩니다. 니케아(325년) -> 제1차 콘스탄티노플(381년) -> 에페소(431년) 성모송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꽃으로 엮어 천주의 성모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순수한 우리의 신심에서 우러나온 기도입니다. 누가 가르쳐 준 기도가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하느님 사랑을 담은 기도가 성모송입니다. 그렇다면 묵주의 기도는 무슨 기도가 됩니까? 최고의 기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종합하는 최상의 기도이자 지상에서 드리는 천상의 기도가 바로 묵주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교주일이자 묵주기도 성월에 선교하는 마음으로 묵주의 기도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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