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를 떠날실 때에 눈먼이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예리코를 떠나신다는 말은 곧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있다는 말이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신다는 말은 어제 복음에서 전해주셨던 세번째 수난예고의 도래를 맞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세번째 수난예고가 이루어지는 날은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일이니
오늘 예루살렘을 향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눈먼이의 눈을 뜨게 해주신 의미는
파스카를 향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운 길을 걷지 않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유다인들은 시편에서도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시편139,12-성무일도4주간수요일저녁)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시편139,12-공동번역)
실재로 파스카를 앞두고 있다는 것은 매우 어두운 시기가 끝나가고 동녘이 밝아오는 새벽녘을 뜻하기도 합니다.
절기상으로도 음력 섣달이나 정월을 지내고 춘분(3월21일)을 기다리는 시기에 속하고
이때는 또한 춘공기(보릿고개)에 속하기도 해서 곤궁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이제 곧 낟알을 거두어들이게 된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빵을 달라고 하지 않고 눈을 뜨게 해달라고 청한 이유도 수긍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눈먼이가 길가에 앉아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눈먼이는 들을 때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부를 때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고 불렀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작게 말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크게 외치고 재차 더욱 큰 소리로 외쳤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바르티매오의 그 외침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서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했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는 말씀이 떠올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온다는 말은 파스카 사건을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는 이미 요르단강을 건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예리코는 요르단과 예루살렘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리코는 요르단 강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요르단 강의 끝 부분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르단 강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강입니다.
가장 낮은 강인 요르단 강의 끝자락을 건너오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와 맞다은 곳을 지나간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로 따지면 밑 둥지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뿌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강이 끝나면 바다가 시작되듯이
둥지가 땅에 뭍히면 뿌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이미 썩어버렸다고도 했습니다.
뿌리가 썩었으니 도끼가 이미 그 뿌리에 닿았다고 까지 했습니다.
즉 요르단 강이 끝나면 더이상 생명을 찾아 볼 수 없는 죽은 바다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곳을 건너오신 예수님 오늘 눈먼이의 곁을 지나가셨고 눈먼이는 그러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일컬어서 누군가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먼이는 그분은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으로 알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눈먼이는 겉옷을 벗어 던져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또다른 제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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