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31주간 화요일 루카14,15-24 (대전협력// 241105 디도)

jasunthoma 2014. 11. 6. 03:27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초대받았던 이들 가운데에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초대받았던 이들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의 신분이 어떻게 바뀌었기에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고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부류의 사람을 예를 들어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사람은 밭을 산 사람입니다. 하늘보다 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밭을 샀으니 이제는 땅 주인이 된 것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땅 한평 소유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땅을 샀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땅을 많이 사보신분 손을 들어 좀 흔들어 보세요. 처음으로 땅 주인이 되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좀 애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땅을 샀다면 아마도 수도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밭을 일구면 소출이 얼마나 나올지. 또는 어떻게 무엇을 경작해야하는지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사람은 겨릿소 다섯쌍을 산 사람입니다. 겨릿소를 샀다는 것은 그 소를 부릴 인부도 샀다는 것입니다. 부릴 사람없이 소만 있어봐야 소용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겨릿소를 다섯쌍 산 사람은 사람을 부리는 주인이 된 것입니다. 종을 부리듯 사람을 부리는 지휘관이 된 것입니다. 저는 제 밑에 부하를 둔 적이 없어서 사람을 종처럼 부리지를 못합니다. 시키기 보다 가능하면 제가 합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사람을 잘 부리는 분 계시면 손을 들어 좀 흔들어 보세요. 만약 제가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았다면 공장을 하나 차리지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부리면 얼마의 마진이 떨어지는지를 계산해야 하기에 거기에 정신을 빼앗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든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깨가 쏟아질 일만 남았는데 뭔 하늘나라가 보일까 싶습니다. 한 집안에 가장이 되었는데 뒤를 돌아볼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그리고 보잘것 없는 종에서 부유하고 귀한 주인이 된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 자리가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신분이 상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잔치를 베푸는 주인과 종의 이야기는 바로 당신 자신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찬찬이 읽어보면 잔치를 베푸는 주인은 성부 아버지이시고 종은 바로 당신 자신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4장1절부터 쭉 연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를 시작으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시고, 초대를 받거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러고 난 뒤,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에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자, 오늘 복음에 이르러 함께 식탁에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초대하라고 하신 그들은 죄인인데 어찌 안식일에 초대받을 수 있겠으며, 그 죄인들이 어떻게 장차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되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너희들이 아니라 안식일에 초대받지 못한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이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1독서 필리피서를 통해서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구원 받고 하늘나라 잔치 음식을 먹게 될 것인지를 예수님의 현존방식, 신분 변화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오로는 주인이신 하느님의 구원방식을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좋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낯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굻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 필리2,6-11)

 

이 그리스도 찬가는 어떻게해서 안식일일지라도 죄인들이 구원될 수 있는지를,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는지를 예수님의 현존방식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습니다. 이 찬가에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신분 변화를 일으키는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자신을 낮추셨다"고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 신분에서 종들의 종의 신분이 되신 것도 모자라 그들을 위하여 죄인이 되시고, 또 그것마저도 버리시고 죽음에 이르시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다인들의 안식일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식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안식일 맞이 ~~~~~ 예수님의 죽으심과 안식일 ~~~~~ 유다인들의 파스카 ~~~~ 그리스도인들의 파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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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성모님께 맞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머니의 아들로, 그리고 어머니를 제자들의 어머니로 맺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날 성토요일(유다인들의 안식일)에 이세상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건너가셨기 때문입니다.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세상에 안계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복자 알베리오네 또한 휴식이란 일을 바꾸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계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명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 안에서 힘들고 지칠 때에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작정 드러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을 바꿔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계속해서 이번 한 달 위령성월을 봉헌 하는 동안 자신을 낯추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의 기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위령들도 함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천상의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중제31주간 화요일 루카14,15-24 (20241105 디도)

세가지 핑계

1. 밭을 산 사람- 밭을 샀는데 그것을 보러가야한다는 핑계

2. 겨릿소를 산사람- 겨릿소를 샀는데 그것을 불려보러 가야한다는 핑계

3. 장가를 든 사람- 방금 장가를 들었으니 갈 수 없다는 핑계

결국 잔치에 초대받게 되는 이들- 장애인,눈먼이,다리저는이

 

1. 밭을 산 사람- 밭을 사기 전에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산 후에 보러가야한다는 이상한 구입방법

2. 겨릿소를 산 사람- 겨릿소를 사기 전에 부려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고 난 후에 부려보러 간다는 이상한 구입방법

3. 장가를 든 사람- 방금 장가를 들었으니 갈 수 없다는 핑계는 장가를 들기 전에 아내 될 배필이 누구인지 만나보고 혼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가를 들고 난 후에 아내 될 사람을 보러가야한다는 이상한 혼인방법

 

세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국 지극히 미신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임. 그러는 이유는 세상 재물과 보화를 잘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임.

미신적인 표현을 잘 보여주는 말 중에 "부정탄다"는 말이 있슴. 집안에 어떤 경조사가 있을 때에 그로부터 얼마동안은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슴.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악귀/전염병/등으로부터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심성으로 지극히 미신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슴. 

잔치가 벌어지는 하늘나라에는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 욕심뿐만 아니라 알수없는 어떤 기운 악귀 전염병이 없는 그야말로 그린하고 클린한 세상을 의미함. 하늘나라는 세상과 달리 현세에 소유한 재물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