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3주간화요일 마태8,23-27 (대전협력// 240702 행운동성당)

jasunthoma 2014. 7. 1. 04: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고 전해줍니다. 그런데 어제 복음은 오늘 복음과 연결해서 볼 수 있게되는데 어제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 가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가려 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5장-7장)를 마치시고 나병환자와 백인대장의 종과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하여 많은 병자를 고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산상설교를 통해서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 다음 아프고 병든 이들을 모두 고쳐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많은 군중이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루카복음에 보면 또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줍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하시고 아버지를 잃은 제자에게는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시고 또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려는 제자에게는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복음의 내용입니다. 어제 복음까지만 본다면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제자로서 상당히 서운하고 섭섭하고 껄쩍지근한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단호히 말씀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없는 분위기가 어제 복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는 호수를 건너기 위해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십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떠나라고 명령했지만 제자들이 변명만 늘어놓자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십니다. 제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호수를 건너기를 꺼려하자 예수님이 몸소 앞장서시는 모습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 배에 오르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호수를 건너가게 됩니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힐 지경에 이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데 풍랑이 몰아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왜 좋은 일보다 궂은 일이 많이 생기는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어떻게 당신을 따르기만 하면 이득은 생기지 않고 항상 손해보는 일만 생기게 되는가? 하고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파선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당신은 태평하게 주무시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그 상황을 좀 더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배에 물이 거의 가득 차게 되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배 고물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당신 자녀들의 고통을 모르실 리가 없으신 분께서 실재로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죽은 듯이 잠만 잔다는 점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신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닙니다. 복음을 통틀어 예수님이 주무시는 모습은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장면이 유일합니다.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예수님은 항상 깨어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자들이 풍랑에 휩쓸려 다 죽어가는 상황에 당신 홀로 평안히 잠들어 계실 수가 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요나서를 보면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나가 야훼 하느님의 눈을 피해 도망가려고 배를 탔는데 태풍이 거세게 몰아쳐 배가 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저희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있는 짐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요나는 배 밑 창에 내려가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호수를 건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도 그 뱃사공들처럼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해 달라고 서로 자기만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애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고 사람낙는 어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선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직 야훼 하느님을 부르기보다 뱃사공들이 흔히 하듯이 자기들만의 신을 부르는데 더 익숙해져 있었습입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신들에게 아무리 애원해도 오히려 풍랑이 더 심해지기만 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어부출신인 제자들이 잠든 목수인 예수님을 깨웠을까싶습니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우리를 이끌고 나와서 이지경이 되었으니 책임지라는 볼멘 소리였습니다. 풍랑이 시작될 무렵에야 예수님없이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 바다 신의 도움으로 그깟 흔들리는 배 쯤이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배는 더 심하게 요동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호수를 다스리시는 분이신 예수님이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불러 깨우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바람과 호수가 고요해지는 것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들이 탔던 배가 파선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그들의 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닙니다. 성난 파도와 거센 바람을 예수님이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자만심에 가득차서 외쳐 불렀던 자기들만의 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한 분이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근심과 고통을 맡기고 평안한 하루가 될 수 있었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