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대림제2주일 마태3,1-12 바른생활(수원본오)

jasunthoma 2013. 12. 7. 06:2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던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과 불을 통하여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그날 타작마당에서 과연 누가 알곡이되고 과연 누가 쭉정이가 될 것인지 잠깐 묵상해 보는 것도 대림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작 마당에 알곡과 쭉정이가 있듯이 오늘 복음에서도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법에 정통한 바리사이, 사두가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법보다는 생활에 정통한 생활력이 강한 요한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생활력이 강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법대로 사는 사람입니까?

 

올해 2013년 8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 과목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국어와 수학 외에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8월부터는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국어와 수학 외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나 라는 과목으로 바뀌었습니다.

내용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과목만 본다면 뭐가 달라졌습니까?

사실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 과목중에서 크게 두가지가 바뀌었습니다.

먼저는 전에는 자연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요근래에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바른생활, 슬기로운생활, 즐거운생활과 같이 생활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은 교과서 과목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뭐였나요?

저는 자연과 체육이었습니다.

교실 밖에서 하는 수업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쉬운 과목이 뭐였나요?

국어도 아니고 산수도 아닙니다.

저는 바른생활이 가장 쉬웠습니다.

바른생활에서 가르치는 것이 뭡니까?

늑대소년 이야기있지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 있지요?

 

나타나지도 않은 늑대가 왔다고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배짱이는 실컷 먹고 노래부르고 놀면서 개미를 훈계합니다.

 

바른생활은 요악하면 다른게 아니라 거짓말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머리쓰고 계산하는 일은 몰라도 바른대로 말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제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일은 어럽지 않습니다. 쉽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너무 쉬워서 바른생활을 대게 시시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렵지도 않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한 일을 오늘 또하고 좀 전에 만났던 선생님께 또 인사하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에 귀찮아 합니다.

늑대 소년이 양지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해서 슬적 거짓말을 한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둘렀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먹었던 것은 메뚜기와 들꿀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하 그거 자연산이라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사실 아주 거친음식입니다.

들어서 나는 가장 흔한 것을 요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은 겁니다.

들꿀을 먹었다고 하니까 뭐 들에 꿀항아리가 있어서 그 것을 퍼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벌들만 꿀을 토해내어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물들도 꿀을 만듭니다.

실비아(사루비아)를 빼서 그 끝을 쪽쪽 빨면 꿀이 나옵니다.

그리고 들판에 잔디처럼 삐쭉삐쭉하게 올라온 풀을 뽑아서 하얀 줄기부분을 씹으면 단물이 나옵니다.

벌들은 그 식물이 만든 꿀을 자기 집에 옮겨다 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들꿀을 먹었다는 것은 들판에 핀 꽃들과 풀들이 머금고있던 그 꿀을 먹고 살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세례자 요한은 그토록 거칠고 달지도 않은 들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내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영이 도래하는 날 이땅에는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그 날이 오면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송아지가 새씨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이가 그들을 몰고 다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디밀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어디서도 참기쁨과 참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세상에서도 그리고 저세상에서도 오직 예수님이 우리안에 임하실 때에 비로소 평화롭고 기쁘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를 지내시면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끊임없이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활을 등한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활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법을 멀리합니다.

생활은 많은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부추기지만

법은 열매는 커녕 있는 생명마저도 앗아갑니다.

즉 생활은 생명을 남기고 법은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2004/12/05 마태3,1-12

일제 해방시기를 다루는 TV드라마에서 앞잡이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반듯하게 차려입고 사무실에 일장기를 붙이고 일제의 법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힘없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곧 광복이되어 모두들 거리로 뛰어나오며 태극기를 흔들자

눈치를 살피던 앞잡이들도 군중속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와 미국만세를 합창한다.

이렇게 앞잡이들이 행동을 바꾸어

일장기를 버리고 태극기를 흔든것이 나라를 위한것이며

진정으로 뉘우치고 마음을 바꾸어서 나타난 행동인가.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각 지방과 요르단강 부근의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으러 몰려가자

바리세이와 사두가이들도 긴 술을 단 옷에 여러가지 장신구를 달고

그 무리에 합류해서 따라갔다.

그들은 얼른 봐도 단연 눈에 잘 뛰는 사람들이고

그 무리에서도 차별화된 세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

이사야서를 언급하며 '길을 고르게 하여라'고 했다.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고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길이 고르게 되려면 높은 곳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돋워줘야 한다.

뉘우친것처럼 침울한 척하며 세례를 받으러가는 모습에서

그들의 거짓이 드러난다.

세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또다시 그들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서...

하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시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주님께서 오시어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숨어있는

바리세이와 사두가이의 모든 위선과 부정한 것을 태우시고

성령과 불로 말끔히 정화시키기 위해

내 죄를 뉘우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