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자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지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취시켜버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로 예언활동이 뜸해지자 예수님이 요한의 뒤를 이어 예언활동을 하고 다니는 걸로 보았습니다.
물론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 자체이신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니라 예언자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던 요셉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손에 대패나 톱을 들고 건축에 대해서 말했다면 모두 수긍을 했을 것입니다.
나자렛 예수님에게 어울리는 것은 펜이 아니라 대패고 양피지의 두루마리가 아니라 통나무를 메고 날라야 그들의 적성이 풀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향 사람들의 눈에는 목수의 아들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광야에서 40일이 아니라 400일을 수련하고 와도 고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뭐 어디 놀러갔다 온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말로 듣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말씀을 말씀으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나병에서 치유되고 사렙타 과부가 대기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예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씀으로 치유되지 않으면 그리고 말씀으로 구원되지 않으면
그어떤 예언자가 손발이 닳토록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되고 치유되는 것은 말씀이 그리하는 것이지 예언자가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은 주변의 아주 작은 곳곳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느끼고 감탄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체험한 사람은 어린이가 내 뱉은 사소한 말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말씀을 벼랑끝으로 몰고가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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