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기도 후에 북서울 꿈의 숲 주차장에 볼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잠시 둘러보았는데
상당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반려동물들과 같이 온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족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왔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왜 흐뭇하고 뿌듯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못들어가게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꾸러미를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 배우고 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직한 베드로처럼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은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열쇠가 필요한 이유는 말 그대로 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닫아걸고 잠글때에는 아시다시피 자물통만 있으면 됩니다.
자물통을 채우는데 열쇠까지 집어넣어서 채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열쇠꾸러미를 들고 하늘나라의 문을 좀 처럼 열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왜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을 막아버렸을까요?
하느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인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람보다 사물을 더 좋아합니다.
그들은 문지기로서 사람을 맞이기 위하여 열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닌 재물을 받아들이는데 열쇠를 사용하려 합니다.
이렇듯 위선자들은 사람들의 소유물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성전의 거룩함보다 성전을 장식할 금붙이의 화려함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제단의 숭고함 보다 제단에 봉헌되는 예물의 가치를 더 귀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개종시킨다고 가르치지만
가르치다보면 어느새 그들 자신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열쇠뭉치를 들고 가르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 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선의 열쇠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의 마음은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늘나라 열쇠를 맡기신 것은 우리도 하느님처럼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않에서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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