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20주간 금요일 마태22,34-40 두가지 사랑(성바)

jasunthoma 2013. 8. 23. 05:15

우리는 하느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사랑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뭐라고 부릅니까? 사람?? 사랑!!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을 일컬어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사람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심각해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는 고통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는 고통이 산재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사랑이시면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사랑이 됩니다.

 

요즘은 가톨릭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라도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도 아주 혼자 살기 좋게 만들어 내 놓고 있던데 10평 내외의 초소형아파트가 인기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협력자를 만들어주었는데

우리는 갈 수록 독방을 만들어 서로를 멀리 하고 홀로 유아독존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본래 유아라는 말은 우주적인 나로서 나밖에 없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아서도 죽어서도 홀로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가지 계명 중 하느님에 관한 세가지 계명을 하나의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또 나머지 일곱가지 계명을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해서 두 계명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둘째 계명을 언급하신 것은 가장 큰 계명인 한 분이신 하느님 사랑에 이어 실천적으로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율법학자가 가장 큰 계명만을 물어보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에 이어 딸린 계명까지 말씀해 주신 이유입니다.

율법학자는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다라는 정통적인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사람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하느님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마지막 권에 '그 누가 짠 것들을 한 울타리에다 모았나이까'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바다란 물들이 한 군데로 모인 것을 말합니다.

물들이 흐르고 흘러서 한데 모이면 그곳은 바다가 됩니다.

그런데 모이기 전에는 순수하나 모이고 나면 모두들 짜다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맛이 드러나지 못한 채 다만 짜다고 표현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좋았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고통스러웠던 때를 되새김질하기 때문에 인생은 짜다라고 밖에 말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다 지으시기까지 일곱번을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감탄하셨을 만큼 세상은 다 좋은 것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낱낱이 보시고 참 좋으셨던 것 같이 모두를 한데 모아 전체를 놓고 보아도 참 좋았으니 하느님 안에서 고통이란 순수한 제각각의 맛에 불과할 뿐 모두가 바닷물을 그저 짜다라고만 말하듯이 이 모두가 좋은 것 선한 것 자체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표현됨이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각자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