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들은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실 때에 봉헌금을 내십니까? 안내십니까?
저는 수도원에 입회하고 나서는 안내는데 저희 수도회 수사님들 중에는 꼬박꼬박 내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입청원 휴가를 나가서 본당 미사때에 준비도 안 했는데 자리를 중간 정도에 앉는 바람에 떠 밀려서 봉헌대 앞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가급적이면 성당에 들어가면 가장 뒷자리 모퉁이에 앉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베드로가 낸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도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내셔야만 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은 세금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백성들로부터 관세나 각종 세금을 거두어들이듯이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도 성전세를 거두어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전세를 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생업에 종사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물과 배를 버렸기 때문에 직업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백수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보통 백수들 같으면 자기가 쓸 용돈 정도는 집안에서 타낼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부모까지 버렸기 때문에 용돈을 비롯하여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성전세가 얼마나 걷히지 않았으면 이렇게 아무런 수입도 없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까지 세금을 받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을까 십습니다.
각종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는 국세나 다른 세금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강제로라도 거두어들일 수 있지만
성전세는 자유롭게 양심적으로 내야하기때문에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
많이 내도 그만 적게내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실 모든 세금의 근본은 종교세입니다.
종교세는 사람의 양심이 있는한 무조건 내야하는 세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는 각종 국가 세금을 지불하느라고 종교세는 낼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던 모양입니다.
농부는 토지세를 내기 전에 수확을 하면 첫 수확물을 거두어 성전에 바치는 것이 농부의 도리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열매를 인간이 먹기 전에 그 열매의 주인에게 먼저 감사를 드리는 만큼 올바른 행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업세를 내기 전에 각종 어획물을 창조하시고 길러주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서 성전세로 지불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잡힌 물고기를 성전세로 지불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물고기가 물고 있던 은화를 성전세로 지불하라고 하실까요?
제 짧은 소견으로 본다면 그당시 물고기 한마리가 물고있었던 세금이 은화 한잎에 달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물고기 한마리를 낙시로 잡아 올리는데 은화 한잎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물로 끌어 올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부자가 될까요? 세금 체납자가 될까요?
그야말로 많이 끌어올린 만큼 빛더미에 앉게 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그 당시 사회 구조가 열심히 일해서 재화를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어찌보면 아주 현명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도 그 당시와 비슷한 사회구조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 더 낳으면 그만큼 더 큰 빚을 지게 됩니다.
자녀 하나를 키워서 자립시키기까지 수억씩 드는 것을 생각한다면 출산은 더이상 한 가정의 은총과 행복이 아니라 부담과 불행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인간은 그 좋은 것을 착취의 수단으로 얼룩지게 만들어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세금을 기꺼이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세례를 통해서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자녀이면서 세금을 내는 이유는 하늘나라를 지상에서 살고있는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와 지상생활을 동시에 살아가면서도 기꺼이 지상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기쁨을 이 세상에서 즐겁게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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