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15주간 화요일 마태11,20-24 내 마음의 하늘나라

jasunthoma 2013. 7. 16. 05:12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계속 비가 오다가 피정 마지막 날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성당에만 앉아서 기도하다가 밤 늦게라도 나가서 기도해 보리라 마음먹고 물 한통과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나는 길이다를 묵상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길의 의미가 가난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카만 하늘이 번쩍 하더니 번개가 쳤습니다.

너무 놀라 혼비백산이 되었는지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그래도 생수도 한통 챙기고 우산도 챙겨들고 나왔는데 번개 한번에 놀라서 그냥 들어가기가 너무 허망해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길을 걸으려고 발을 떼는데 또 다시 번쩍하며 머리위에서 번개가 쳤습니다.

두렵고 떨려서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마저 기도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십니다.

그 중에 특히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 더욱 호되게 꾸중을 듣습니다.

이 고을들은 갈릴레아 호숫가에 몰려 있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렀던 곳들입니다.

특히 그곳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잘 사는 고을들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같으면 강남의 압구정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십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수님 께서 이토록 화를 내시며 호되게 나무라시는데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에 사로잡혀 있길래 회개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을 걷모습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안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떠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예수님이 풍랑을 가라앉히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셔도 그들과는 아무 상관이없습니다.

그들이 힘든 노역으로 지은 황궁에 살지 않고

비싼 세금으로 사들인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한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어떤 일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차라리 벽돌과 이야기를 하는 편이 그들이 회개하는 것보다 더 수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난해지는 변화는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낮아지는 변화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단순해지는 변화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광야로 내 몰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늘나라를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알려주신 네가지 길이 있습니다.

기도 공부 가난 사도직입니다.

기도와 공부가 한 축으로 앞에서 이끌고

가난과 사도직이 한 축으로 뒤에서 밀어서 수레는 움직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네가지 길은 가난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기도를 오래토록 길게 지루하게 시시콜콜 자세히 바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매우 깊고도 심오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그러한 기도야말로 가난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몸소 근검 절약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프란치스칸처럼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내가 가난해 지는 것은 프란치스칸입니다.

바오로인의 가난은 사도직을 위한 가난입니다.

사도직을 위해서 내가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