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11주간 월요일 마태5,38-42 선한 용기

jasunthoma 2013. 6. 17. 05:4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선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인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느닷없이 오른뺨을 치는 사람,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은 예전이나 요즘이나 폭력을 일삼는 악인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원을 물리치지 마라고 하실까요?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것 보다 더 후하게 베풀어 주라고 하시는데 왜 그럴까요?

제1독서에서 사도바오로가 말했듯이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며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라고 하십니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극히 인본적인 실천사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세상은 빼앗고 독차지는 관계가 아니라 베풀고 나누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본다면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분명히 구분되지만 결코 인간이 인간의 원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험상궂은 성격을 지닌 형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라지도 밀도 통째로 앗아가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밀은 밀이고 가라지는 가라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주변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힘든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오늘도 내 뺨을 치고 내 속옷을 빼앗아 저 골고타로 끌고가려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침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뺨을 맞았다고 달아나 버린다면 더 이상 그와는 뺨을 때릴 때만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사랑을 실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를 사랑으로 볼 수있는 선한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저 형제가 싫다고 피해버리거나 방에 숨어서 안나온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의미는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악을 선으로 품어줄수 있는 선한용기를 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