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얼마전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 일이 있었는데 그날이 단식을 해야하는 날에 이었나봅니다.
그리고 그 날 뿐만이 아니라 왠만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할 수 없는 이유로 혼인잔치의 비유를 드십니다.
아무리 단식제가 중요해도 혼인잔치가 있는 날조차 단식제를 적용하면서 사람의 혼사길을 막을 수 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혼인비유의 당사자는 누구일까요?
누가 혼인을 하며 누구의 혼인 잔치일까요?
신랑은 누구이고 신부는 누구입니까?
가톨릭 교리서는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신부는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즉 신랑은 한분이시지만 신부는 한 개인이 아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부가 누구라고 명백하게 밝히지 않으십니다.
단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신랑의 손님들은 단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일컬어서 혼인잔치 손님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을 때를 기념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면 분명 이 비유는 분명 레위를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제외한 모두를 손님들이라고 지칭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소 서운함이 감지됩니다.
당신을 따르겠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삶이 고귀하고 거룩한 신랑이나 혹은 신부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기껏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잔치음식이나 축내고 있는 손님들 중에 한 지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신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는 신랑도 아니고 신부도 아닙니다.
우리는 새옷에 기워대는 새천조각이며 새술을 담아내는 새부대입니다.
하지만 새천조각은 새옷에 기워진 순간 새옷이 되고 새부대에 새술이 담기는 순간 둘이 한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동정 순교자 아녜스가 보여준 삶은 곧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지체로서 한 몸이 되어 천상의 거룩한 거처에 머물 수 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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