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1주간금요일 마르2,1-12 영혼의 구원(스승)

jasunthoma 2013. 1. 18. 05:36

저희 외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는데 3일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동안 병원을 이곳저곳 찾아 다녔고 이래저래 않되자 출장 한의사를 불러 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사흘이 한 달마냥 길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왜그렇게 시간이 잘 안가는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시는 장면에서 율법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의아해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율법학자들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그 집에 모인 군중들도 마찬가지로 이해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듯이 중풍병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 간단할 것을 왜 하필이면 복잡하게'죄를 용서'해 주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일을 만들어서 율법학자들의 빈축을 사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에서 죄의 용서는 최소한 하느님 흠숭 계명과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어느 누구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계명도 첫째 계명인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는 계명에 앞서 적용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쉽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쉬운 방법으로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에관한 계명은 어렵게 말하면서도 인간에 해당되는 계명은 쉽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부모님께 바칠 공양을 묵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할 수 없기에 애두른 표현으로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복잡하게 돌려가면서 말하는 것을 선호하였던 모양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 돌리고 예수님 "너는 쓰러진 사람이나 일으켜 보아라"며 빈정거렸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용서해 주십니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시급했으면 남의 집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들것에 달아서 내려보냈을까요.

꼭 007 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인 더 쉬울까요?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죄 사함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중풍병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우리는 우리힘으로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