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여름을 생각해 본다.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목이 늘어난 헐렁한 면장갑을 끼고 낫과 호미들을 챙겨서
내 동생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토끼풀을 뜯으러 방죽(방천)끝으로 갔다.
동생들은 호미로 질경이며, 크로버며, 잡풀들을 뿌리째 캐고,
나는 낫을 들고 이것저것 넝쿨들을 베기 시작했다.
그곳은 뙤약볕인데 그늘도 없어서 아주 짜증스러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온몸으로 낫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손을 슬적 베었다.
헐렁한 장갑 속에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후끈거리던 몸은 앉아서 피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오전에 성당에 갔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미사 끝나고 신앙학교가 있으니
성당에 남아서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성당 애들과 함께 성당마당에서 물놀이도 하고,
퀴즈를 맞히는 게임도 하고,
상품도 타고 싶었지만 토끼풀을 뜯으러 가야 하기에 아쉽지만
그냥 돌아서서 성당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날만 곧장 집으로 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외갓집에서 자랐는데
널찍한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으로 토끼장이 촘촘히 세워져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토끼를 평균 100여 마리 정도 키우셨는데
여름철에는 140여 마리까지 늘었다가
겨울이 되면 50여 마리까지 줄어들었다.
그동안에 토기들을 장에 내다 팔거나 잡아먹었다.
토끼들은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여름에는 리어카로 매일 풀을 해다 날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장이 서는 날에는 배추잎사귀와 무청을 얻으러
장바닥을 뒤지다시피 하며 외할머니를 따라다녀야 했고,
또한 틈만 나면 동네 방앗간에 가서 누런 쌀겨를 얻어 와야 했다.
그런데 여름방학 중에 서울에서 사촌형제들이 외갓집에 놀러왔다.
그들은 토끼들을 보며 너무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했다.
나는 토끼를 좋아하는 그들이 싫었다.
토끼를 보고 사랑스러워하며 풀을 주는 그들이 못마땅했다.
토끼가 귀엽기는커녕
토끼를 보며 즐거워하는 그들을 쏘아보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괜한 토끼장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왜 똑같은 외손자들인데 저들은 뙤약볕에 나가지도 않고
시원한 미숫가루를 타먹으면서 마루에서 재잘재잘 재미나게 뒹굴고 있고,
나는 저 하찮은 토끼들 배 채우느라 이 고생을 해야만 하는가.
그때 말 못하며 속으로 꿍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라고 이야기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서울로 돌아갔다.
나는 괜히 시무룩하게 지냈다.
그런데 장마철이 다가오기 전에
외할머니께서는 텃밭에 거름으로 쓴다고 건너편 장애인 집에 가서
오줌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북받쳤던 울분을 떠뜨렸다.
왜 나만 이렇게 고생을 해야만 하는지...,
나도 그 때 그 애들과 함께 시원한 미숫가루를 먹으며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들 앞에서 나만 미워하기라도 하듯이
외할머니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일거리만 잔뜩 주시고,
큰 소리로 떠들지도 못하게 윽박지르셨는지...,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리고 외할머니께 회초리로 맞았다.
그때에 울며 성당으로 뛰어갔다.
'이나중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 외로움을 주시는 분 (0) | 2011.06.05 |
---|---|
성모자상 (0) | 2011.05.29 |
스승의 은혜 (0) | 2011.05.22 |
하느님! 완성하시는 분 (0) | 2011.05.22 |
사랑 속 사랑 (0) | 201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