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이야기

의 좋은 길

jasunthoma 2010. 2. 6. 09:09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이 이렇쿵 저러쿵 말이 많아졌다.

특히 헤로데 임금은 자신이 죽였던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한번 만나뵙고 확인하고 싶어졌다.

 

누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의 임무 외에 그 사람의 명성도 함께 살아야 하기에 자신을 더욱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의롭게 살아가던 사람의 길을 함께 걷는 다는 것은 하늘에 내 영혼의 보화를 쌓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로데 임금은 정의롭게 대를 이어가지 못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고 싶어할 때가 있다.

그래야만 내일이 행복해 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은 욕심을 낳기만 할뿐 자신을 비롯하여 이웃을 괴롭히기까지 한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내 이웃도 행복해 질 때 가능하다.

바로 옆에 불행이 함께하고 있는데 내가 행복할 수 없다.

조금 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하늘나라는 아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라고 혹은 엘리야라고, 옛 예언자라고 불리는 것은 인간적인면에서 바로 의롭고 공정하게 이웃을 바라보고 사랑하셨기때문이다.

오늘도 내 이웃을 한사람 한사람 모두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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