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최고 제사장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그 후계자 티베리우스 시대의
그리스도교적 배경1)
고대에서 가장 발전되었던 그리이스와 로마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세속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이스인들은 시인, 철학자, 예술가로서 그리고 로마인들은 조직자, 법률가 그리고 지배자로서 그러나 이러한 업적의 찬란함은 단지 종교와 도덕의 부패를 완화시킬 뿐이었다. 고대 다신교와 국가의 종교는, 타락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에게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평민층은 그때까지만 해도 신앙의 도덕에 관한 방법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반면, 로마 제국 말기에 교육받은 지식층은 계급적 미학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2) 황제의 국가종교와 선조들에 대한 경건심을 복구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황제 제국의 초창기 이래로 헬레니즘 문화는 제국으로부터 ‘황제 숭배 제의’로 소개되어져 하느님에 대한 신앙 대신에 죽은 사람들, 심지어 살아있는 황제에까지 신성한 영광이 돌려졌다. 이와 함께 모든 종류의 종교적인 미신들이 성행했다. 특히 도시에 사는 상류계급 사이에 종교적 쇠퇴와 함께 놀랄 정도로 도덕적인 무감각 상태로 나아갔다.
그렇게 많은 범신론적 종파에도 불구하고 신의 인식에 대한 영화(靈化)가 눈에 뛸 정도로 현저했고, 무의식 중에 일신론 쪽으로 향하는 추세였다. 종교적 쇠퇴를 살펴보면, 공화국 말엽에 통화주의적인 새로운 물결이 일어났다. 신들의 재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종파에서, 특히 동방 제의와 조화를 이루었다. 계속해서 우주의 보편적인 구원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종교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깊어졌으며,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
옛날 고립된 동양에서는, 왕은 지혜와 사제적인 신성을 가지고 있어서 신의 아들로써 그리고 예정된 세상 통치자로 여겨졌다. 그는 구원자였으며, 새 왕조의 시작은 새롭고, 복된 시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심지어 로마 황제는 영광스러운 명칭(황제-신-구원자)를 받았다. 이와 같은 사상은 Virgil의 유명한 네 번째 목가시와 신과 세계의 중재자이며, 보편적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Logos에 대한 스토아 학파의 사상에서 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Hermes Trismegistos(cfr.§17,2)와 관계되는 문학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사실상 많은 잘못을 포함하고 있는 그리이스 철학은 또한, 열렬한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교로 가는 다리를 형성해 줄 수 있는 많은 진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1) Karl Bihlmeyer, Hermann Tüchle, 교회의 역사, 대건신학대학 교회사연구회, 1984, 21-24.
2) 제2차 삼두정치의 장본인으로서 악티움(Actium)해전에서 승리하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군주 부부를 동반자살하게 했으며, 이에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존엄자 또는 지존(至尊)이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 박상래, 성서와 그 주변 이야기,
바오로딸, 1997, 11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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