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사

단성설에 관한 칼케돈 공의회 결정과 그 배경

jasunthoma 2009. 2. 28. 19:39

단성설에 관한 칼케돈 공의회 결정과 그 배경

 

   오늘날까지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론의 기초교리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로 초세기 그리스도론을 정립한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의 그리스도론은 두 본성이 ‘분리되거나 혼합되지 않음’이다. “우리는 신성에서나 인성에서나 완전하신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일치된 마음으로 가르칩니다. ⋯ [두 본성으로부터sus가 아니라] 두 본성 안에서in, [단성론과 반대로] 혼합되거나 변화하지 않으시고, [네스토리우스주의와 반대로] 분리되거나 나누어지지 않으시고, 두 본성이 하나의 인격(프로소폰)과 하나의 위격(휘포스타시스) 안에 보존되십니다.”1)

     네스토리우스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개의 본성을 잘못 분리하므로 구세주의 단일성이 위태로워진 반면에 그들의 많은 반대자들, 특히 알렉산드리아학파가 다른 극단으로 떨어졌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손상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강조하였고, 또 본성들을 혼합하거나 혹은 신성에로의 인성의 흡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물론 두 본성(Natura)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가 이제 우리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고 신화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단성론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2개의 성설이 네스토리아니즘적 이단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플라톤 철학에 의존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의 신화뿐 아니라 역시 개개의 인간의 신화로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오므로 그리스도 단성설(Monophysitismus)은 고대 그리스도교의 종교상 가장 위력이 있고 대중적인 이단이 되었다. 2)

     칼케돈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주의자와 단성론자의 그릇된 그리스도상 사이에서 중도를 걸었다. 그것은 동방과 서방, 교황과 황제의 종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황제의 제국 정책, 대립하는 총대주교들, 국가 간의 특수 이해, 수도자들의 광신 등, 경쟁 세력들 간 격렬한 투쟁의 결과”(Grillmeier)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성론적 사고는 이미 이집트와 인접 국가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칼케돈의 신조로도 근절할 수 없었을 뿐더러, 제국 변방에서는 분리주의와도 결합되어 있었다.3)

     그렇다면 왜 그토록 단성설의 뿌리를 뽑기가 어려운가? 그 이유의 배경이 될 만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의 비정착생활이다. 사실 당시 규율 없고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교회정치적으로 행동하며 술책을 쓰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그리스도론 논쟁을 비롯한 많은 싸움에서 특수한 문젯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의회는 떠돌이 성직자들을 규제하는 규정들을 공포하여 그들을 주교 감독아래 두었고, 또 일정한 교회와 결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서품을 금지했다.4)



1) 후베르트 예딘, 최석우, 세계공의회사, 분도출판사, 2005, 36.


2) Karl Bihlmeyer⋅Hermann Tëchle, 교회의 역사, 대건신학대학 교회사연구회, 1984,196.


3) 후베르트 예딘, 최석우, 세계공의회사, 분도출판사, 2005, 36-37.


4) 클라우스 샤츠, 이종한, 보편공의회사, 분도출판사, 2005,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