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신경의 발전과 원인
시대가 흐르면서 다양한 시대적 필요에 따라 많은 신앙고백 또는 신경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아타나시오 신경이라고도 불리는 ‘퀴쿰퀘(Quicumque)신경’, 몇몇 공의회의 신앙 고백들(톨레도, 라테라노, 리옹, 트리엔트), 교황들의 신앙 고백들(5세기 ‘다마소의 신앙고백’,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의 ‘하느님 백성의 신앙고백’)이다.1)
사도시대에 있어서 신앙고백은 세례의 절차로서 고백되었으며 입교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나면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사도 2,41). 2세기에 있어서 신경은 예비자 교리교육의 기초구실을 하였는데 사도로부터 전승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주요점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이레네오와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진리의 신앙 규칙(regula fidei seu veritatis)’라고 하였고, 그 후에 ‘징표(symbolum)’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하나의 고정된 형태의 신경은 우선 2세기경 히폴리투스(Hippolytus)에서 확정된다. 그것은 소위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도신경’이며, 그것이 기타 모든 서구의 신앙고백의 공동적 토대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전능하신 천주성부와,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성교회와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포함하고 있었다.2)
신경이 형성된 배경에는 이단과 이교와의 논쟁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단과 이교의 출현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발전을 가져다주는 원인이 되었다.
삼위안에 하나인 천주에 대한 교리(Trinitas)는 이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새롭고 고유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다 순수히 받아들여 그 가르침을 인정하지를 않았다. 그들 중에서 특히 유다-그리스도교적인 이단은 많은 사람들의 혼란을 야기시켰는데, 그들에게 있어서는 구약이 신약에 의해 폐지되었다는 것을 거의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세율법을 언제나 모든 이의 구원에 꼭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율법을 높이 평가함에 따라 예수의 높은 본성(Natura)을 아주 또는 부분적으로 반박하면서 신약의 창설자를 과소평가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이교도들은 선과 악의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교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거나 전혀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로부터 창조란 그들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단일적 세계관에 대하여 이원적 세계관을(하느님과 영원한 물질) 내세웠다. 그리하여 이단은 신앙의 진리를 여러면에서 보다 명백히 설명하고 각 방면에서 근거를 세우고 보다 명백하게 정식화하는데 중요한 자극을 주었다.3)
교회 역사상 다양한 시대에 생겨난 신경들 가운데 어느것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신경들은 변함없는 신앙에 대한 요약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날에도 그 신앙에 다다르고 깊어지도록 돕고 있다.4)
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2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4, 107.
2) Karl Bihlmeyer⋅Hermann Tëchle, 교회의 역사, 대건신학대학 교회사연구회, 1984, 79-81.
3) Karl Bihlmeyer⋅Hermann Tëchle, 교회의 역사, 대건신학대학 교회사연구회, 1984, 90-91.
4)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3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4,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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