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24,1-12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어떻게 부활하셨습니까??? 누워계시던 주님께서 깨어나셔서 벌떡 일어나셨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복음 루카복음에서 주님 부활의 장면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아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
아마포만 놓여있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마포를 벗었다는 말이죠. 시신이 아마포를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아마포조차 걸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나셨다는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 십자가 위에서 처형되실 때처럼 몸에 아무것도 감싸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아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감싸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니코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다고 했습니다.
죽은 시신을 아마포로 감싸는 것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관습에서 벗어 나셨던 것입니다. 아마포로 감싸는 것조차 벗어 버리셔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무엇을 입기 위해서 그 관습을 벗어버리신 것일까요???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13,12)고 권고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옷을 입으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어둠의 행실을 쫓아가는 죽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빛을 추구하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빛은 그림자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빛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만나면 그 만난 곳의 그림자는 더 짙어집니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과 가까워 지면 그림자는 미침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빛과 빛이 만나면 그 만난 접점의 빛은 더 밝아 집니다. 그렇다고 빛과 마주친 빛 반대쪽에 그림자가 지는 것은 아닙니다. 빛과 빛은 마주치더라도 서로 통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빛은 오직 비추는 일이 그의 속성이며 그림자를 쫓는 일이 그의 역할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둡고 우울한 기쁨이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쁨과 기쁨이 만나면 더 밝은 기쁨이 일어나지만 그 이면에 어두움이 있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이 주님을 생각하면 기뻐지는 것은 명백한 주님 부활의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 왔던 지난 날들의 일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기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십자가처럼 고통이따르는 시간이었더러도 기뻣노라고 즐거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난 날을 주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면 지금 과연 주님 부활을 기뻐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봄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훗날 주님 부활의 체험으로 다시 깨어날 때까지 주님과 함께 지내며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부활 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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