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8,21-30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당신은 누구요?”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마전장이//구두수선공//양치기//목수//대장장이//머슴//수다쟁이//글쟁이//청소부(세상청소부)//유모//무수리 등등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나는 그 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 하는”사람이다.(요한8,26) - 예언자/전달자 라는 말이죠.
둘째는 “나는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사람이다.(요한8,29) - 창조자/일꾼 이라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치게 되면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됩니까???
예수님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이며/일 일까요????
여기서 “마음에 드는”이라는 말은 “아레스타/아레스토”인데 “유쾌한/즐거운/환영받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레스토”의 어원 “아레스코”는 “진정시키다/누그러뜨리다/달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레스코의 어원 “아라/아로”인데 “아로”는 펼치다/들어올리다는 의미로써 “아로마이”라고 하면 “기도하다/간절히바라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란 근본적으로 무슨일이고, 또 어떤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진정시키고/ 누그러뜨리고/ 달래는 기도(간절한 바람)” 가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의 진정한 의미가 됩니다.
즉 진정시키는 기도/ 누그러뜨리는 기도/ 달래는 기도를 하는 사람, 일꾼이 바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며, 하느님에게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예언자이며,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일꾼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어떻게 정의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까???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다”라고 당신을 정의하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요 근래에 명동성당에 기도만 하는 신부님들이 파견되었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진정시키는 기도를 드리고, 누그러뜨리는 기도를 드리고, 또 달래는 기도를 드리셔야 했습니까???
첫째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이 그렇게 진정되고 누그러지고 달래졌을 때에 이웃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립자께서 DF(Done Formetur Christus in Vobis) 정화의 길을 시작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하느님은 필연적 존재이십니다. 하느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 곧 "홀로 주님이신 분", 순수 영이시며 지극히 위대하신 분, 지식 자체이시며 힘, 전능을 지니신 영원하신 분이며 영광을 충만히 입으신 분, 가장 완전한 존재 자체이십니다.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신 분, 스스로 가장 행복하신 분입니다. . .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이십니다"
그리고 창립자께서는 하느님에 이어서 당신 자신을 일컬으며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누구인가? '너(나)는 무이다' 너(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너(나)는 지극히 불완전한 존재. . . 영혼과 육신으로 된 존재, 존재와 활동이 불완전한 존재이다"라며 당신에 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당신에 관하여 한계를 지닌 피조물, 즉 나약한 존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형성 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고 결핍된 상태로 창조된 이유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모실 공간을 비워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닮을 때까지, 당신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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