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16주간 화요일 마태12,46-50 (20240723 스승)

jasunthoma 2024. 7. 23. 05:0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마태/마르/요한복음에서 알려주고 있는데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대목(마태13,53-58; 마르6,1-3)십가가 아래에 계신 어머니를 소개하는 장면(마태27,56; 요한19,25-27)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대목(마태13,53-58; 마르6,1-3)을 보면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세,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13,55) 라며 마리아와 그 베필이신 요셉 그리고 그의 형제들 4명을 예수님과 더불어 한 가족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라며 누이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모님에 대한 믿을 교리(1. 평생동정; 2. 천주성모; 3. 무염시태; 4. 몽소승천)로 알고 있듯이 성모님은 동정을 간직한 채 잉태하시고 예수님을 낳으신 후에도 동정으로 지내셨다고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평생동정은 십자가 밑에 계신 어머니를 소개하는 장면 요한19,25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십자가 밑의 장면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있었다"(요한19,25) 여기에서 유념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더불어 이모를 따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이모를 소개하지 않을 뿐더러 예수님의 어머니조차 소개하지 않습니다. 공관복음(마태/마르/루카)는 오히려 마리아 막달레나를 가장 먼저 언급할 뿐입니다. 즉 공관복음만을 본다면 성모님과 예수님의 이모가 소개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스승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가 아닌가?라는 물음애 대한 답변으로서 성모님께서 야고보와 요세도 낳으셨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만을 본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이모의 아들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예수님의 형제들을 가까운 친척들로 보는데 무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승에 의하면 요한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에페소 공동체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의 참가족이었다면 십자가 곁에서 종적을 감출 수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네 형제들 중 한 명이라도 십자가 곁을 지키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참 가족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밖에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가족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참 가족인가?? 라는 물음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이들 중에서 사랑하시는 제자와 어머니 그리고 그 곁에 함께한 세 여인(마리아들)이 참가족이 될 것입니다. 이로써 누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인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금 예수님 곁에 누가 있는가???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나는 어떤가??? 예수님의 참 가족인가??? 또 더 나아가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님 안에서 우리는 어떤가??? 참가족인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