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한 이리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아보듯이 그들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가시나무이며, 무화과를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엉겅퀴라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일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일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일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그들은 포도와 무화과를 열매 맺지 못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그 반대는 가능하게 합니다. 그 반대는 가능하다는 것을 빗대서 하신 말씀이 아닐까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그 반대는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시 속으로 포도를 넣을 수 없지만 포도속에 가시를 넣을 수는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엉겅퀴 속으로 무화과를 넣을 수 없지만 무화과 속에 엉겅퀴는 집어 넣을 수 있는 이들입니다. 즉 양은 이리의 탈을 쓰고 이리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리는 양의 탈을 쓰고 양떼 속에 들어가서 양들을 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 열매와 무화과 열매는 예수님 당신 자신을 상징하고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거짓예언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거짓예언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는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아이(일류샤)의 이야기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한동네 사는 살인범 스메르자코프는 아이(일류샤)에게 말랑말랑한 빵 조각에다가 바늘을 집어넣은 다음 굶주린 개한테 던져주고 이를 지켜보자고 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였더니 개는 씹지 않고 빵을 꿀떡하고 삼키고 맙니다. 삼킨 뒤 미칠 듯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습니다.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하던 아이는 중병에 걸리고 맙니다. 하지만 얼마 후 죽은 줄 알았던 개(주치카)는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빵은 일용할 양식이자 생명의 양식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 곧 성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빵에다가 바늘을 넣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모독적인 행위였음을 알리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찌르는 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짓 예언자들은 가시로 포도를 찌르면 아픈줄 알면서도 그런 짓을 양심의 가책없이 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황금률를 우습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전에 7,12에서 예수님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했습니다. 이 황금률을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네가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마라”입니다. 하지만 거짓 예언자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형제에게 떠넘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형제가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나의 라임 오랜지 나무에서 주인공 제제는 라임 오랜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냅니다. 책에는 제제가 나무를 껴안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넣기도 하는데 사실 오랜지 나무는 가시가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에 가시가 있어서 나무가 작을 때에는 껴안을 수 없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가시가 있더라도 나무가 자라서 알찬 라임 오랜지를 한가득 맺어주는 나무가 되면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지에 가시가 있어서 껴안을 수 없지만 좋은 라임 오렌지를 한가득 열매 맺는 굵은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나무에 올라가서 껴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함께 묵상할 수 있는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에수님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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