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에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하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두가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만일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일곱형제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예를 들면서 부활이 있다고 하시며, 부활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확증시켜 주십니다. “사람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즉 부활한 사람의 모습은 천사의 모습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무슨 뜻입니까??? 천사가 누구입니까??? 천사(앙겔로스)는 기쁜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①“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다”라는 말씀은, 부활은 죽은 이들을 위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활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②천사와 같아진다는 말씀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③형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먼저 죽게되면, 그의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여서 후사를 보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말은 어떤 말이나 다릅없습니까??? 혼자 남아있는 아내에게는 어떤 소식과도 같게 됩니까??? 부활소식과도 같은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은 뭡니까??? 아내도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지요. 왜냐하면 혼인으로 둘은 한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부였던 한 몸의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나머지쪽인 아내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형제가 먼저 죽은 형제의 다른 한쪽이 되어 줌으로써 죽었던 아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탈출기와 신명기에 나옵니다. 탈출3,1-6의 하느님께서 떨기나무 대목에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기서 신을 벗어라는 말씀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하고 당신 이름을 알려주기 바로 전에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신을 벗어라는 말씀을 듣고 신을 벗었을까요??? 벗지 않았을까요???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을 잘하니까 신을 벗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신을 벗는다는 말은 형수의 후사를 남기지 않겠다는 거부의 뜻으로 하는 맹세입니다. 그러니까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시나이 광야에서 들었던 말씀입니다. 미디안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양떼를 몰고 시나이산 호렙까지 건너갔기 때문에 들었던 말씀입니다. 따라서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는 말씀은 여기 거룩한 땅에서 형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맹세하고 미디안 장인의 집으로 가거든 처제들과 처형들을 받아들이지 않게다고 맹세한 대로 살아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미디안으로 달아났을때 미디안의 사제집에서 머물렀는데 그 집안에는 딸이 일곱이 있었습니다. 미디안 사제 르우엘은 자기 딸 치포라를 모세에게 주었습니다. 그 여자가 모세에게 아들을 낳아주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첫 아들을 낳고 나서 양을 치러 시나이 광야까지 건너갔는데 시나이 산에 도착하자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 말씀을 했던것입니다. “이리 가까이 오지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기서 “신을 벗어라”는 말은 신명25,10의 후손에 관한 규정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으면, 그 형제의 아내가 성문으로 원로들에게 올라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제 시숙이 이스라엘에서 자기 형제의 이름을 이어주기를 거부합니다. 저에게 시숙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읍의 원로들이 그를 불러서 그에게 타일러야 한다. 그래도 그가 고집을 부리며 ‘나는 이 여자를 맞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 형제의 아내가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다가가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은 다음,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된다.’하고 말해야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에서 그의 이름은 ‘신 벗겨진 자의 집안’ 이라고 불릴 것이다.”(신명25,5-10)
그러니까 모세는 고민에 빠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사제의 딸 일곱 중에 치포라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는데 문제는 다른 딸들에게, 즉 나머지 딸들에게 후사를 남겨주어야 하는 문제 앞에 섰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씀, 즉 ①“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다”라는 부활신앙의 말씀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부활은 죽은 이들을 위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활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②천사와 같아진다는 말, 또한 반쪽이되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③형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여서 후사를 보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됩니까??? 살아있는 아내에게는 부활소식과도 같은 말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드렸다시피 남편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은 뭡니까??? 아내도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인으로 둘은 한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먼저 죽었기 때문에 나머지쪽도 죽은거나 다름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가 먼저 죽은 형제의 한쪽이 되어 줌으로써 죽었던 아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러한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떨기나무 아래서 맹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맹세하는 증표로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미디안 땅이 아니라 거룩한 땅 호렙산이 있는 시나이 광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돌아가서는 그 맹세를 이행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디안 장인 집을 떠나서 에집트로 다시 돌아갈 때에 그에게는 치포라가 낳아준 아들만이 아니라 여러명의 아들들을(탈출4,20)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을 탈출시켰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세상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고 우리 가정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반쪽의 반쪽이 되어 주시는 분, 기쁜 소식이 되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이 죽은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이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도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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