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따로 뽑아 파견하십니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상징적인 숫자들이 사용되는데 일흔이나 일흔둘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특히 헬레니즘(그리스)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한차례 파견(루카9,1-6)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일흔둘을 따로 뽑아 재차 파견하는 이유가 뭘까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어졌기"때문입니다. 먼저 열둘을 뽑아서 보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파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파견장소가 이스라엘 지역에서 이방인 지역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레아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순례하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는 길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사마리아로 사람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오경을 모세의 율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신화(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모시기 위해 개종해버린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개종했던 이유를 2마카베오서에서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 아테네로부터 이교 예식을 강요받은 바가 있었는데, 그때 그리스(헬레니즘)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 성전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게하였다. 그리고 사마리아의 그리짐산에 있는 성전을 "나그네(hospitalrario:극진히 맞이하는)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2마카6,2) 그래서 극단적 유대인들은 그러한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이방인이나 적으로 여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맞서 사마리아인들 또한 그들대로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극단적 유대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또 예루살렘 성전이 하느님을 합법적으로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짐산에 그들의 성전을 세우고, 세켐을 재건하여 그들만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사마리아인들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마리아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디에다가 무엇을 세우고 그들만의 중심지로 삼으며 교회에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는 걸까요??? 오직 성경만으로를 외치며 교회를 떠난 이들이 그 안에서 또 다른 성경주의를 외치며 떠나서 분리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시대에 유다인은 유다인대로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인대로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었을까???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께 앙갚음을 하겠다고 집을 떠났던 아들이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그렇게 회심하여 돌아오기만을 끝까지 기다릴 수도 있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파견을 감행하십니다. 이방인 지역으로 보내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마리아지역이 있다면 그곳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물질주의/ 편리주의/ 자본주의/ 엘리트주의/가 재배하는 곳이 바로 오늘날 사마리아이며 우리의 파견지가 아닐까합니다. 집나간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떠날 때 떠나고, 머무를 때 머무르면서 복음 선포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며 퍄견된 제자가 지녀야할 두가지 본분을 알려주십니다. "떠나라/그리고 머물러라"입니다. 왜냐하면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추수는 테리스모스θερισμός인데 테리스모스의 어원 테로 θέρω ( 테리스모스θερισμός, 테리조θερίζω, 테로스θέρος, 테로 θέρω)는 "안으로 던지다/ ~향해 던지다/ ~에 던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선 "떠나라"입니다. 마치 어린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가거라"입니다. 그리고 "머물러라"입니다. 이집 저집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한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뭘까요? 애인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애인과 함께가면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보다 더 빨리 가는 방법은 뭘까요?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마중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중나갈때에는 그 사람을 만나서 함께 가는 것 보다 실재(느낌말고)로 더 빨리 갑니다. 전자는 거리를 눈멀게 하지만 후자는 시간을 눈멀게 합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갈때에는 시간가는줄을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마중나갈 때에는 천리길도 지척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3. 오늘날 가장 시급한 전교는 가정의 평화이고 가장 큰 선교는 가정의 성화가 아닐까 합니다. 성가정에서 교회의 모든 자양분이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가정의 평화, 그리고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파견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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